논설위원

좀 황당한 경험을 했다. ‘4대강 살리기’ 정부 발표(4월 27일) 후 궁금한 게 있어서 관계되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 말이 “휴대폰은 사무실에 두고 나왔다”고 했다. “위치 추적당하는 일이 없도록 그랬다”는 것이다. 언론사 사람과 만난 일이 나중에 문제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만한 사정이 있다. 조선일보가 4월 22일자에서 4대강에 보(洑)를 만들면 수량(水量)은 늘지만 물 흐름이 정체돼 수질이 나빠질 수 있다는 국립환경과학원 시뮬레이션을 보도했었다. 보도 다음 날 총리실 공직기강팀에서 나와 국립환경과학원이 4월 15일 시뮬레이션을 보고할 때의 환경부 내부회의 참석자 45명을 조사했다. 회의 내용 유출자를 찾겠다는 것이었다. 어느 기자와 언제 무슨 통화를 했고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를 추궁했다.

정부 사업에 보안(保安)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4대강 수질 시뮬레이션은 그런 '기밀(機密)' 취급을 받을 사안은 아니다. 그 소란이 있은 후 환경부 간부를 만났는데 "(정부 핵심에서) 수질악화 측면이 있다는 걸 생각 못했다가 당황한 것 같다"고 했다. 그 말대로라면 환경과학원 시뮬레이션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까딱했다간 4대강 사업이 수질을 망칠 수도 있었던 것을, 보완책을 강구해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

4월 27일 4대강 사업 대통령 보고회 때 수질 대책은 환경부가 맡아서 했다. 환경부는 4대강에 16개 보를 만든다는 사실을 그날 아침에야 통보받았다고 한다. 사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언론에 브리핑도 했던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측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작년 5월 건설기술연구원 박사가 "4대강 정비의 실체는 운하 계획"이라고 양심선언 비슷한 걸 한 일이 있다. 정부 연구용역을 하는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환경단체나 반대 정파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 하는 일이라면 일단은 시비부터 건다. 정부가 노이로제에 걸릴 만도 하다.

그러나 4대강 살리기는 14조원이나 드는 프로젝트다. 정부 안팎의 최고 전문가를 불러 아이디어를 모으고 토론을 시켜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홍수를 막고 가뭄에 대비하고 수질도 좋게 하겠다는 사업이다. 취지가 이렇게 좋은데 뭣 때문에 비밀 프로젝트라도 수행하듯 숨겨가며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국토해양부는 4월 20일 '4대강 기획단'을 '4대강 추진본부'로 확대 개편하면서 수자원 전문가를 본부장으로 영입했다. 본부장이 된 사람은 자리에 앉고 7일 만에 대통령 보고회를 주관했다. 현황 파악하기도 벅찬 시간이다. 보고회 일정을 1주일 앞두고 본부장을 새로 앉혔다는 것도 납득이 안 된다. 새 본부장이 오고 나서 1주일 사이 사업의 굵직한 줄기도 바뀌었다. 낙동강 수심을 6m로 정한 것이다. 기획단은 그보다 훨씬 얕은 수심을 유지한다는 안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수심 6m'는 대운하 계획 때에 나왔던 얘기다. 추진본부는 수심 유지를 위해 낙동강에서만 4.2억㎥를 준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돌아가는 것을 보면 4대강 추진본부의 바깥 어딘가에 별도 비선 조직이 움직이면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준설을 하면 모래를 파내게 된다. 모래가 그냥 있는 게 아니다. 물이 모래 틈을 지나면서 오염물질이 여과된다. 홍수의 사나운 물살은 모래와 자갈을 밀고 다니면서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소모한다. 모래톱이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여울은 하천에 산소 공급을 해준다. 강바닥이 수시로 모양을 바꿔가며 생태환경을 교란시켜야 생물종이 다양해진다. 유럽 국가들은 모래톱을 살리는 자연형 하천정비로 방향을 틀고 있다.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이런 문제까지 따져가며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짧은 시간에 어떻게 14조원짜리 마스터플랜을 짤 수 있느냐는 지적이 많다. 몇몇 사람이 돌아가는 사정을 일절 바깥에 밝히지 않으면서 4대강 마스터플랜을 그리고 있다면 그건 뭔가 켕기는 것이 있거나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