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로 들어서는 순간 노 전 대통령이 탄 차량에 계란이 날아들었다.
과거를 들여다 보면 전직 대통령 뿐만 아니라 대선 후보와 국무총리 등 정치인들은 늘 계란의 ‘위협(?)’에 노출돼 왔다. 그 중 특히 노 전 대통령은 계란과 인연이 깊다.
1990년대 이후 정치인들의 ‘계란 수난사(史)’를 보면 ‘계란 봉변’은 단순한 항의를 표시하는 ‘해프닝’이 많았지만 정국의 흐름을 뒤바꾼 ‘역사적 사건’도 있었다.
◆ 노 전 대통령, 최다 계란봉변
노 전 대통령이 계란 세례를 받은 것은 지난달 30일을 포함해 모두 4번이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1시19분쯤 리무진 버스를 타고 대검청사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버스 쪽으로 신발 한 짝과 날계란 5~6개가 날아들었다. 투척된 계란 중 2~3개는 버스의 지붕 부분과 창문에 맞았다.
신발과 계란을 던진 사람은 보수단체 회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저녁 ‘곰탕 특(特)’과 함께 계란 프라이를 반찬으로 먹었다.
노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계란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0년. 당시 3당 합당에 반대했던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역 앞 시민집회에서 계란을 맞았다.
이어 민주당 고문시절인 지난 2001년 5월에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을 방문했다가 계란세례를 받았고,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2002년 11월 1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우리 쌀 지키기 전국농민대회’에 연설을 하는 도중 참석자가 던진 계란에 얼굴을 정확하게 맞았다.
당시 노 후보는 계란 봉변에도 얼굴을 닦은 뒤 연설을 끝까지 마쳤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 ‘계란 봉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정치하는 사람들이 한번씩 맞아줘야 국민들 화가 좀 안풀리겠냐. 계란을 맞고 나면 문제가 잘 풀렸다”고 웃어넘겼다.
노 전 대통령에게 계란은 ‘부활’의 상징이기도 했다.
지난 2004년 5월 헌법재판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선고 당시 노사모 회원들은 노 전 대통령의 ‘부활’을 상징하는 계란을 1만여개를 삶아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 전직 대통령들의 수난
노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김영삼·전두환 전 대통령도 퇴임 이후 계란봉변을 당했다.
지난 1999년 6월 3일 퇴임 후 일본으로 첫 외국출장을 가기 위해 김포공항에 나왔던 김 전 대통령은 재미교포 박의정(당시 71세)가 던진 계란에 이마에 맞았다.
계란에는 빨간색 유성페인트가 들어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얼굴과 상의에 빨간색 페인트가 가득 묻은 채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계획적이고 살인적인 행위”라며 정치테러설을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겨냥,“독재자 밑에서 국민들이 고생한다”며 “김대중 대통령이 (배후를) 찾아내면 내가 상을 주겠다”고 했다.
경찰은 박씨를 구속하고 배후에 대해 조사했으나 결국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었다.
앞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1998년 11월 17일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거행된 ‘국난극복 참회 대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부인 이순자 여사 등 일행과 함께 광주공항에 도착,차량을 타고 정문을 빠져나가다 20~30대 청년 5~6명에게 날계란 세례를 받았다.
◆대선후보들도 잇따라 수난
이명박 대통령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도 대선 후보 시절 계란 때문에 수난을 당했다.
이 총재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지난 2007년 11월 13일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이모(32)씨가 던진 달걀 두개에 이마와 볼을 맞았다.
이씨는 현장에서 지지자들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이 후보는 이후 "계란 마사지를 받아 얼굴이 예뻐졌다"는 농담으로 웃어넘겼다.
경찰은 이틀 뒤 이씨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석방했다.
이어 그해 12월 3일에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경기도 의정부 중앙로 앞 거리 유세에 들어가기 위해 차량 연단에 오르던 중 왼쪽 허리 부근에 계란을 맞았다.
달걀을 던진 사람은 스님 복장을 한 50~60대 남성이었다.
이 후보는 코트의 가슴 및 왼쪽 허리 부분에 계란이 묻은 채 곧바로 바로 연설에 들어갔다. 이 남성이 뿌린 전단지에는 "부패하고 정직하지 못한 이 후보는 즉각 사퇴하고 검찰은 BBK사건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나경원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선거 폭력이나 테러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더욱 그런 폭력이나 테러에 혹 배후가 있다면 이는 선거 자체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난하면서 경찰의 철저한 조사를촉구했다.
2002년 대선에 출마했던 전 전 대통령의 최측근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도 그해 11월 18일 광주 5·18 국립묘지 추모탑을 참배하다 5·18 청년동지회원들로부터 계란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장 전 부장은 수행원들과 경찰의 경호 덕분에 계란에 맞지는 않았다.
노 전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는 계란 봉변에 대해 농담으로 반응한 반면 이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테러 배후설"을 주장해 엇갈린 반응을 보인 점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보수파인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도 지난 2007년 7월 19일 보수단체 회원들에게 '계란 봉변'을 당했다.
당시 당 평화통일특위 위원장이었던 정 의원은 이날 낮 12시 30분쯤 재향군인회의 원로자문위원회 회의에서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비전’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서울 신천 향군회관을 방문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대북정책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던진 계란에 얼굴을 정확히 맞았다.
정 최고위원은 이후 향군회관 경비들의 경호를 받으며 서둘러 12층 행사장으로 올라갔고, 향군측이 준비한 새 셔츠로 갈아 입고 한반도 평화비전을 역설했다.
◆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의 계란 봉변
계란 봉변이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정국에 큰 파장을 준 적도 있다.
지난 1991년 6월 3일 당시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가 서울 외국어대 대학원에서 특강을 하고 나오다 학부 학생들에게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았다.
외대 학생들은 더구나 정 총리 서리의 멱살과 허리끝 등을 붙잡은 채 끌고 다니면서 주먹질과 발길질까지 했다.
당시는 명지대생 강경대씨와 성균관대생 김귀정씨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사망해 노태우 정권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상태였다.
학생들은 마지막 강의에 나선 정 총리 서리에 대해 "외대의 수치"라고 항의하며 이같은 계란 세례를 했다.
그러나 '계란봉변'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당시 학생들은 "반인륜적인 폭력" "스승을 때린 패륜아"라는 거센 비난을 받았고,이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되면서 1987년 6월항쟁을 방불케하던 그해 5월 시위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