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들이 ‘검은돈’ 수수 혐의로 잇따라 구속되면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정권 탄생에 기여한 문화·연예계 친노 인사들의 현주소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무현 핵심 지지 세력이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는 다수의 대중 스타들이 참여했었다. 이들은 “노무현과 철학과 가치관을 공유한다”며 선거 유세 과정에서 ‘노무현 전도사’ 역할을 담당했다. 또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에는 문화·연예계에서 상당한 입김을 행사했다. 핵심 인사들은 ‘노문모(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등 친노 전위조직을 만들어 정치인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노무현 정권의 이른바 ‘코드 인사’ 대상이 됐고 실제로 요직에 기용돼 문화·연예계에서 스스로 친노 세력을 키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법처리 위기에 몰린 요즘, 이들은 ‘노짱’으로 떠받들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정권에 대해 거의 말문을 닫고 있다. 그저 생업에 종사할 뿐 지난 정권에서의 전력을 떠올릴 만한 언급 자체를 삼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부 인사들이 최근 불거진 친노 인사들의 ‘검은돈’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이들의 현주소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노사모 전 대표였던 배우 명계남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명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수사 과정에서 강씨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명씨를 비롯해 ‘노무현 전도사’로 활동했던 친노 문화·연예계 인사들의 현재 모습을 살펴봤다.
명계남 전 노사모 대표- 강금원 돈 받은 '돌격대장', 홍천서 시나리오 작업
'친노 돌격대장'으로 불렸던 명계남(57)씨는 친노 연예인 중 유일하게 최근의 '검은돈' 스캔들에 이름을 올렸다. 친노 세력 중심에 섰던 그의 위상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표적 후견인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횡령 혐의로 구속한 대전지검 특수부는 명씨가 강 회장으로부터 2006년 10~12월 세 차례에 걸쳐 5400만원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고 불법성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강 회장은 명씨를 자신이 소유한 충주 시그너스골프장 직원으로 등재해 놓고 급여 명목으로 돈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강 회장은 지난 4월 9일 회사돈 266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명씨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정권의 탄생에 앞장섰었다. '국민참여운동본부 100만 서포터스' 사업단장을 맡아 '희망돼지 저금통' 모금 운동을 벌였다. 당시 명씨는 '스크린쿼터 사수'를 명분으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그런데 대선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스크린쿼터 완화를 시도했음에도 불구, 반대 집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영화인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명씨는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에도 노사모 대표를 맡는 등 지지세력 규합에 앞장섰다. 특히 그는 연예계와 노무현 정권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 역할을 했었다. 그는 노무현 정권에서 문화부 장관에 발탁된 이창동·김명곤씨 등과도 친분이 두터웠고, 노문모 주요 멤버였던 배우 권해효, 영화감독 여균동씨 등과도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명씨는 2006년 노무현 핵심 지지세력인 노사모 2대 대표를 맡았다. 당시 명씨는 '노사모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하는 노사모 일부 세력과 마찰을 빚은 끝에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인사들을 축출하고 대표에 올랐다. 당시 명씨와 마찰을 빚다 노사모에서 제명된 한 인사는 "명씨가 노무현 주변 사람들과 워낙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당시 그의 발언에 대해 반박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말했다.
명씨는 노무현 정권 내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사모 전직 간부들은 "명씨가 청와대 인사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명씨는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터진 사행성 게임 비리 '바다이야기'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명씨는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007년 조직한 친노 인사들의 모임인 참여정부평가포럼의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명씨는 노무현 정권 말기부터 영화계로의 복귀를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영화 출연이나 영화 제작 등에서 별다른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명씨는 2007년 11월 자신이 소유한 영화사 이스트필름의 법인 주소지를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으로 옮겼다. 그 전까지 이스트필름은 서울 마포·영등포·종로 등지로 사무실을 자주 옮겨 다녔다. 영화계에서는 "명씨가 시골 폐교에서 살며 조용히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이스트필름은 지금까지 만든 영화가 한 편도 없다. 현재 이스트필름 법인 주소지의 소유자는 강원도 춘천에 거주하는 40대 여성 유모씨로 돼 있다.
명씨는 지난해 6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문을 연 한 연예인 양성학원 원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이 학원은 명씨의 원장 취임이 주목을 받자 그 해 11월 보도자료를 내고 "배우 명계남은 자신의 배우 인생을 잠시 뒤로 하고 실력 있는 배우들을 키우기 위해 연기학원 겸 예술학교인 B학원 초대원장으로 취임했다"고 밝혔다. 이 보도자료에서 명씨는 "그동안 난 단지 당원으로서 정치에 참여를 한 거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면서 "연기 이론과 실제, 문화예술의 이해 등을 직접 강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 주장과 달리 지금까지 이 학원에서 강의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학원 관계자는 "학원을 오픈하고 나서 1~2개월에 한 번 나오시는 걸로 안다"면서 "가끔 나와 커피를 한 잔 할 뿐 별도 사무실이나 책상은 없다"고 말했다. 연예계에서는 명씨가 이 학원의 '얼굴 마담' 정도 역할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학원은 이벤트 대행사인 C사 정모 사장이 7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명씨 소유 지분은 없다.
명씨는 정청래 전 의원의 후원회와 함께 '원칙과 상식'이라는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유명무실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씨는 작년 9월 있었던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자녀의 결혼식에 참석했었고 작년 여름 촛불시위 때는 시위 현장에 자주 얼굴을 나타냈었다.
문성근 전 국민참여운동본부장 - 연기에만 전념… “정치 참여 후회하지 않는다”
2002년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인천부평지구당 대통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 참여를 선언했던 배우 문성근(56)씨는 2004년 열린우리당 국민참여운동본부장과 친노 인터넷 매체 '라디오21' 이사를 지내는 등 명계남씨와 함께 노무현 정권을 지지한 대표적 연예인으로 손꼽힌다. 그는 명계남씨와 함께 노무현 지지 연예인 모임인 '노문모'를 조직하는 데 앞장섰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측 수행단에 포함돼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 등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문씨는 2002년 대선 당시 노풍(盧風)의 중심에 있었다.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노풍 발원지였던 광주 현장에 있었고 경선 후 노사모 축하잔치에도 참여한 노사모 핵심 멤버였다. 그는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왜 노무현인가'라는 주제로 전국 선거 현장을 누비며 지지 연설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문씨는 2002년 10월 노무현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유시민 전 장관 등이 만든 개혁국민정당 창당발기인대회에 참석해 "우리 역사가 필요로 하는 후보는 노무현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그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지역 대결구도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식적 인물이었다. 아버지를 대신해 고착화된 지역구도를 푸는 일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면서 정치 참여 배경을 밝힌 바 있다. 노사모와 관련해서는 "노사모는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더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씨는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에는 본업인 연기로 돌아왔고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닫고 있다. 기자들의 질문에 "그 부분은 말하고 싶지 않다"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난 3월 18일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내가 정치를 하면 상업배우로서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숙고 끝에 정치에 참여했다"며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한 것이고 신분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판단은 국민들의 몫"이라고 답했다.
노사모 핵심 멤버로 함께 활약했던 명계남씨가 지난 정권에서 본업에서 사실상 손을 떼고 있던 반면 문씨는 '오로라공주' '한반도' 등의 영화에 꾸준히 출연했다. 최근에는 드라마 '자명고'와 영화 '실종'에 출연해 연기파 배우로서의 관록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창동 전 문광부 장관 - 장관 시절 ‘코드 인사’ 논란… 영화 제작 중
노무현 정부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이창동(55) 감독은 노문모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영화계 친노 인사이다. 그래서 장관 발탁 당시 연예계 출신 친노 인사들의 활동에 대한 ‘보은 인사’가 아니냐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 장관 취임 이후에는 문화계 요직에 노문모에 관계한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과 문화연대 출신의 진보적 인사들을 대거 발탁해‘코드 인사’ 논란을 불러왔다. 그는 노무현 정권 취임 초기부터 ‘기자실 개혁’을 명분으로 브리핑제도를 도입하는 등 취재를 제한하는 정책을 잇따라 펴 ‘언론과의 전쟁’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역시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에는 정치적 자리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유인촌 장관이 마련한 역대 문화부장관 초청 간담회에도 불참했다. 그는 장관 퇴임 후 만든 영화 ‘밀양’으로 칸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영화감독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현재 영화 ‘시’와 ‘여행자’ 등을 제작하고 있다.
김명곤 전 문광부 장관 - 전주소리축제 위원장… "지난 10년 평가는 더 지난 후에"
노무현 정부 세 번째 문화관광부 장관에 오른 연극인 김명곤(57)씨는 장관 퇴임 후인 2009 전주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장관 취임 초기 아리랑TV 부사장 인선과 관련 청와대 청탁을 거부한 유진룡 차관이 경질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장관 재임 기간에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 사건이 터져 정권 차원으로 번진 게이트의 '소방수' 역할을 맡았다는 평가도 받았다. 당시 '바다이야기' 사건에는 노 전 대통령의 조카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사법처리되지는 않았다.
그는 이명박 정부 초기 정치권에서 논란을 빚은 지난 정권 심판론에 대해 "지난 10년의 평가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이뤄져야 한다"면서 노무현 정부를 옹호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연극 '경성에 딴스홀을 허하라' 예술감독을 맡는 등 본업인 연극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밖의 노문모 회원들 - 윤도현·권해효·문소리·여균동·정지영·신해철…
노문모는 2001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문성근·명계남·권해효·문소리 등 유명 배우와 영화감독 이창동·여균동씨 등이 주도적 역할을 맡아 결성한 친노 성향의 문화예술인 단체다. 노문모의 초기 회원 수는 700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다. 배우 최종원·방은진, 가수 정태춘·안치환·신해철·윤도현·전인권·한영애·크라잉넛·자우림, 영화감독 정지영·임순례씨 등도 노문모 회원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에도 정치적 목소리를 내며 적극적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배우 권해효(44)씨는 노 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집회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고 집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권씨는 작년에 고 최진실씨 자녀 친권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 땅의 친권법이 남녀 모두를 위해 평등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재 드라마 '카인과 아벨' '코끼리' 등에 출연 중이다.
여균동(51) 감독은 2004년 총선 당시 경기 고양 일산을 출마를 위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으나 중도에 출마를 포기했다. 여 감독의 입당은 노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인 이기명씨가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 감독은 최근 '1724 기방난동사건'을 연출했다.
영화감독 정지영(63)씨 역시 2004년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선정위원으로 활동했다. 정 감독은 지난 3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남북관계 위기타개를 위한 비상시국회의'에 참석하는 등 여전히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배우 최종원(59)씨도 2004년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예비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열린우리당 문화예술특위 지도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7년 만에 대학로 연극무대에 복귀하는 등 연기에만 전념하고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공식 지지했던 가수 신해철(41)씨는 최근에도 잦은 정치적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얼마 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자신의 홈페이지에 '북한 미사일 발사 경축'이라는 문구를 올려 논란에 휩싸였고, "김정일 정권에 살아야 한다"며 이를 비판한 친박연대 송영선 의원을 향해서는 "아줌마나 천황 밑으로 가지?"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최근 야후코리아 TV의 '진중권의 이슈 in 이슈'에 출연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실망을 느끼고 마음이 아프다"면서도 "노무현 정권을 통해 얻은 것을 잃지는 말자" "권위주의를 해체한 것은 경제적으로 따질 수 없는 대단한 가치다. 그것마저 잃게 되면 (우리 국민에게) 남는 건 뭐냐"고 주장했다.
배우 문소리(35)씨의 경우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으나 노 정권 출범 이후 FTA 반대 입장을 밝히며 민주노동당 지지자가 됐다. 문씨는 지난해 '광우병 반대 촛불시위'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했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공식 지지했고 지난해 광우병 파동 당시 촛불집회 무대에 오르기도 한 가수 윤도현(37)씨는 최근 KBS로부터 잇따라 출연 불가 통보를 받아 주목을 받았다. 윤씨의 소속사 대표 김모씨는 이에 대해 "2002년 11월 YB(윤도현 밴드)의 공연장을 방문한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지지의사를 표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지의사 표현 이외의 어떠한 지지활동도 하지 않은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라며 "윤도현은 노사모 회원도 아니고 그 활동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