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양병(十萬養兵)'을 주장한 율곡 이이가 '십년양정(十年養精)'의 정성을 기울인 끝에 태어났다? 지난주 한 일간지의 연재만화 '꼴'의 내용이다. '타짜' '식객'을 그린 허영만 화백의 만화에 따르면 십년양정은 '10년 동안 정기(精氣)를 모은다'는 뜻이다.
만화는 10년간 합방(合房)을 거부했던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 부부를 치켜세우면서 이렇게 알뜰살뜰 저축한 정기로 만든 아기가 바로 율곡이라 전하고 있다. 과연 사실일까? 우선 10년간 합방을 거부했다는 것부터가 사실과 다르다.
사임당은 3살 연상의 남편 이원수(李元秀)와 7남매를 뒀다. 21세 되던 해인 1524년 첫째 아들 선(璿)을 낳았다. 26살에 맏딸 매창(梅窓)을 낳았다. 33살 되던 해인 1536년 율곡을 낳았다. 맏딸과 율곡의 터울만도 7살이다. 게다가 사임당은 맏딸 매창과 율곡 사이에 아들, 딸 하나씩을 더 뒀다.
이원수, 신사임당 부부는 10년 간 최소 4명의 아이를 낳은 셈이다. 정한교(54) 오죽헌 시립박물관장은 "위인일수록 설화가 따라붙기 마련인데 '십년양정설'도 사임당의 혜안(慧眼)을 드러내려는 이야기 중 하나일 것"이라고 했다. 의학적으로는 어떨까?
김종흥(53) 세화병원 불임연구소장은 "금욕생활을 오래 한 사람 중에 정자의 질이 안 좋은 경우가 많다"며 "그런 사람일수록 정액 검사를 해 보면 죽은 정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고 했다. 이경섭 강남경희한방병원장은 "3~4일이면 다 썼다가도 다시 채워지는 게 젊은 남성의 정자인데 이걸 참는다고 질이 좋아진다는 근거는 없다"고 했다.
홍순기 청담마리산부인과 원장은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임신율도 떨어지고 난자의 질도 떨어진다"며 "금욕이라는 것보다도 젊은 시절의 신사임당에게서 더 좋은 난자가 나온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박영철 하이미즈 한방불임클리닉 원장은 "술 마시고 대충 만든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기질적으로 다른 건 분명하다"며 "도가(道家)적 의미에서 본다면 수양을 해서 좋은 기운을 아이에게 전해준다는 것은 충분히 일리 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만화를 감수(監修)한 신기원씨는 "어렸을 때 월간야담(月刊野談) 등에서 본 내용"이라며 "오입 대장이 영특한 자식을 얻기 힘든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정(精)을 쌓을 여유도 주지 않고 색(色)을 남용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적 의미"라며 "사임당 자손이 7남매인 것은 처음 알았다"고 했다.
덕수이씨 율곡파의 15대 종손 이천용(67)씨는 "서로 10년 터울이 되는 남매가 한 명도 없는데 무슨 소리냐"며 "만화 그리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