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지난 9일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100만달러를 청와대에 전달하고 그와 별도로 3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을 때 "정 전 비서관은 단순한 전달자일 뿐 (돈은 내가 받은 것)"이라는 팩스를 판사에게 보냈다. 이 진술은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가장 큰 사유가 됐다. 노 전 대통령도 지난 7일 정씨가 검찰에 체포되자 인터넷에 사과문을 올려 "그 혐의는 정 비서관의 것이 아니고 저희들의 것입니다.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권 여사 진술과 노 전 대통령의 해명은 거짓이었다. 사실은 권 여사가 3억원을 받아 빚 갚는 데 쓴 게 아니라 정 전 비서관이 자신이 잘 아는 사람 이름의 계좌에 넣었다가 양도성예금증서(CD)로 바꿔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직 대통령과 그 부인은 왜 자기들이 빌리지 않았던 돈을 자기들이 받아 썼다고 했을까. 여기에서도 변호사였던 노 전 대통령의 법정(法廷) 전략이 느껴진다. 공무원 신분이었던 정 전 비서관이 돈을 받으면 뇌물죄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지금까지 권 여사처럼 일반인이 돈을 받았을 경우 구체적인 대가 약속이 없었다면 '알선수재'로 처벌하지 않는 판례를 유지해왔다. 노 전 대통령이 박 회장이 준 '100만달러'와 정대근 전 농협 회장의 회갑 축하금 3만달러에 대해서도 "나는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노 전 대통령 부부의 거짓말은 돈 심부름을 도맡아 해온 정 전 비서관이 구속돼 검찰의 수사를 받다 노 전 대통령측의 또 다른 비밀에 입을 열지도 모른다고 염려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정 전 비서관이 한 일을 권 여사가 했다고 나섬으로써 정 전 비서관에게 은혜를 베풀어 다른 비밀에 대해 입을 다물도록 유도하려 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 전 비서관의 차명계좌에서 새로 발견됐다는 10억원의 돈이 누구 돈인지 주목된다.

노 전 대통령은 "중요한 건 증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거짓말을 통해 증거 조작을 시도했다. 이제 검찰이 아니더라도 그가 한 말을 정말로 믿기는 어렵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