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갈 때는 안경을 써라? 이르면 이번 주말부터 서울대공원에서 적용할 권장사항이다. 서울대공원은 커다란 눈과 눈썹 일부를 그려 넣은 '동물관람용 안경'을 제작해 오는 24일부터 동물원 입구에서 1개 1000원에 판매할 예정이라고 19일 밝혔다.

이 동물관람용 안경은 두꺼운 종이로 제작돼 얼굴에 쓸 수 있지만, 시력 보정 기능은 없다. 안경알이 있어야 할 자리엔 우스꽝스럽게 위로 치뜬 모양의 가짜 눈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이 안경을 쓴 관람객들은 그림 속 눈동자 가운데 동그랗게 뚫려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동물들을 훔쳐봐야 한다.

대공원 측이 이런 안경을 만든 이유는 안경 다리에 적혀 있다. '눈이 마주치면 동물들이 싫어해요!' 낯선 이가 눈을 맞춘 채 자신을 응시하면 도전해 오는 것으로 느껴 흥분하는 동물이 많다는 것이다. 고릴라·오랑우탄·침팬지 같은 유인원들은 눈이 마주친 관람객을 향해 흙이나 돌멩이를 집어던지기도 한다. 서울대공원에선 고릴라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관람객에게 화를 내며 배설물을 집어던져 큰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지난 16일 서울대공원을 찾은 가족이‘동물관람용 종이 안경’을 쓰고 다섯 살 된 암 컷 오랑우탄 보람이와 악수하고 있다.

대처 방안을 강구하던 대공원 직원들은 최근 네덜란드 로테르담 동물원에서 답을 찾아냈다. 이 동물원 수컷 고릴라 '보키토'는 2007년 5월 18일 우리를 탈출한 뒤 주변을 배회하다 자신을 응시하는 여성을 공격했다. 이 사고를 처리한 보험회사는 '보키토가 눈이 마주친 사람을 공격했다'는 데서 착안해 '보키토 관찰 안경'(BokitoKijker)을 만들었다. 눈동자가 엉뚱한 곳을 향해 쏠려 있는 안경을 쓰면 동물들과 눈이 마주칠 염려가 없고 표정도 익살스러워져, 안경을 좋아하는 관람객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서울대공원은 이 안경을 본뜬 동물관람용 안경을 만들었고 '재미있는 동물안경으로 코믹표정을 연출하라'며 관람객들에게 착용을 유도하기로 했다. 강형욱 서울대공원 홍보팀장은 "동물들 마음도 편하게 해주고 관람객들도 즐길 수 있는 좋은 해결책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안경과 별도로 서울대공원은 관람객들을 위해 길이 약 15㎝, 지름 약 3㎝의 커다란 펜 모양 '동물 음성해설기'도 준비했다. 특수 인쇄돼 칩이 내장된 동물원 지도에 음성해설기의 펜촉 부분을 대면 그 위치에 있는 동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흘러나온다. 음성해설기는 무료 대여하고 영어·일어·중국어판도 조만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