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8일 문을 연 2000억원짜리 '부산국제수산물도매시장'이 엉망이다. 처리 물량이 계획의 20%에도 못 미치는 등 거의 개점 휴업 상태다. 시장 운영 법인 3곳이 경영분쟁이나 무성의 등으로 인해 제대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때문이다. 개장 당시 표방했던 '부산을 동북아 수산물류 중심지로 만들 견인차'는커녕 도리어 지역 수산업계의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는 형국이다.

시설은 한국 최대, 물량은 구멍가게

부산시가 2090억원을 들여 지은 이 시장엔 연근해 수산물을 취급하는 ㈜부산수산물공판장과 원양·냉동·수입 수산물을 다루는 ㈜PW수산·부산감천항수산물시장㈜ 등 3개 법인이 입주해 있다. 이들 법인이 연근해, 원양, 수입 수산물을 끌어와 거래를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이들 법인은 지난해 개장 이후 3개월 남짓한 동안 7372t을, 올 들어 지금까지 5592t의 수산물을 거래하는 데 그쳤다. 작년엔 PW수산이 고작 56t만 유치했고, 올해는 부산수산물공판장이 지난 2~3월 21t을 처리하는 등 부진하다. 올해 처리 물량의 경우 계획량(월 1만t)의 10%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부산국제수산물도매시장'은 시장회관, 도매장, 냉동냉장창고, 활어양육장, 폐기물처리장동 등 6개 건물에 연면적 11만1769㎡ 규모다. 연간 46만t의 수산물을 거래할 수 있는 크기로 지어졌다. 이런 곳에서 개장 후 7개월간 고작 1만2900t만 처리했다. 대형 마트에서 동네 수퍼마켓 정도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꼴이다.

도매시장에서 중도매인들이 전자경매를 하고 있는 모습.

업체의 도덕적 해이 등 탓

이처럼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것은 엔고로 일본 수입 수산물의 물량이 크게 줄어드는 등 외부적 요인도 있다. 하지만 운영 법인의 내부적 요인이 더 크다는 게 지역 수산업계의 분석이다. 부산시 국제수산물도매시장 관리사업소에 따르면 입주 3개 법인 중 부산감천항수산물시장은 경영권 갈등으로 운영 자금을 투자하지 못하면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PW수산은 이달 들어 모기업인 PW제네틱스가 경영난으로 코스닥에서 퇴출된 데다 전문성도 떨어지면서 물량 유치와 경영에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연근해 수산물 법인도 만들어야 한다"고 생떼를 써 수입·원양 수산물 중심 시장으로 운영하기로 한 부산시의 당초 방침을 바꾸기까지 하면서 입주한 부산수산물공판장 역시 올 들어선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 수산업계에선 "입주 법인들이 시민 혈세로 지어준 멋진 시장을 제대로 활용, 부산을 동북아 수산물류 메카로 만드는 데 일조는 못할 망정 제 밥그릇 싸움에 혈안이 돼 도리어 재를 뿌리고 있다"는 비난을 하고 있다.

부산시의 빗나간 예측도 한몫했다는 지적도 있다. 1990년대 중반 이 시장 조성을 계획할 당시의 예상이 지금 상황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즉, 수입·원양 수산물의 물동량이 기존 시장 외의 큰 시장을 새로 만들어 소화할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부산시 대책

부산시는 이들 3개 법인에 경고 처분을 내렸다. PW수산에 대해선 다음 주 중 10일간 업무정지 처분을 할 방침이다. 우선, 행정지도로 이들 법인의 개선 노력을 촉구하고 이도 여의치 않을 경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이 부산시의 방침이다. 시장관리사업소측은 "부산감천항수산물시장의 경영 분쟁은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말했다.

새로운 대안으로는 현재 입주 의사를 밝히고 있는 다른 법인들로 교체하거나 일본 선어 수입 물량 외에 러시아 등 다른 나라 물량이나 새 어종들을 취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송양호 시장관리사업소장은 "밥도 뜸이 들어야 하는 것처럼 시장이 정착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며 "오는 9월까지는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고 시장이 정상화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