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자는 말이 없습니다. 오늘도 비바람 속에서 도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릴 뿐입니다."
육군이 2000년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시작한 이래 사상최대의 병력을 투입한 올해 양평·가평 등 수도권 주요 격전지에서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의 유골들이 잇따라 발굴되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유해발굴 사업을 통해 전국의 총 57개 지역에서 유해 2855구가 발굴됐다. 이중 북한군·중공군·유엔군 등을 뺀 나머지 2230구만이 국군장병 유해이다. 발굴된 유해가 많은 것 같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국방부에 따르면 6·25전쟁 때 전사하거나 실종된 국군장병은 16만2394명이다. 이중 2만9202명만이 국립현충원 등에 안장돼 있고 13만3192명은 아직 한반도 어딘지 모르는 땅속에 묻혀 있다.
전사(戰史)로 볼 때 13만여명 중 남한 지역엔 8만~9만명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 2만5000~4만명, 비무장지대에 1만5000명 정도다. 이런 수치에 대비해보면 지금까지 발굴된 국군장병 유해는 남한지역에 묻힌 국군장병 매장자의 3%도 안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지난해까지 사단급으로 발굴활동하던 것을 올해부터는 군단급으로 격상하고 48개 지역서 대대적인 발굴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육군 20사단 '지평리 전투' 중심 활동
육군 제20기계화보병사단(사단장 임국선)은 지난 3월31일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소재 미원초교 엄소분교에서 유해발굴 개토제를 갖고 본격적인 유해발굴을 시작했다. 이번 유해발굴은 6·25 전쟁 당시 중공군과 격전을 벌였던 용문산·지평리 일대에서 5월29일까지 두달간 진행될 예정이다.
유해발굴단은 우선 지난 1일부터 한국전쟁사와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지뢰가 터져 땅이 파였을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 및 방공호 등을 중심으로 지평리 소재 배미산 정상부터 월산저수지 부근까지 150여곳의 유해 추정지점을 선정하고 유해발굴을 하고 있다. 오는 20일까지는 미군 및 프랑스군과 국군 학도병 등 5000여명이 중공군 5개사단 5만명을 맞아 중공군 6000여명을 몰살시켜 세계 전사에 이름을 남긴 지평리 지구 전투(1951.2.13~15·양평군 지평면 일대) 현장을 중심으로 발굴작업을 벌인다. 이후에는 육군 6사단과 중공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용문산 지구 전투(가평군 설악면 일대)현장으로 이동하여 5월말까지 유해발굴을 전개한다.
올들어 20사단 발굴팀 125명과 7군단 유해발굴단 1개반이 공동 참여, 13일 현재 완전유해, 부분유해 28구의 유해와 카빈 탄창, 버클, 전투화 밑창 등 유품 22종 87점을 발굴했다.
발굴된 유해와 유품은 가평군 설악면 엄소분교에 마련된 감식소로 옮겨 오는 8월에 지역통합 영결식을 가질 예정이다.
20사단은 지난해 4월 유해발굴 사업을 처음 시작, 완전유해 10구, 부분유해 68구, M-1탄 등 유품 44종 616점을 발굴해 국방부 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중대장으로 참전했던 전준두(82·예비역 대령)씨는 "지평리 일대는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미군과 국군, 북한군의 시체가 산을 뒤덮을 정도였다"며 "늦었지만 우리 군이 지금이라도 발굴 작업을 하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20사단 성준호 정훈공보참모는 "유해 한 점을 발굴하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듯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유해발굴사업은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그들의 혼을 위로하는 거룩한 작업"이라며 "마지막 한 구의 유해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제보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육군 17사단, 철저한 고증통한 탐사
17사단(사단장 강완구)은 지난 4월1일부터 인천·부천·김포지역 등 작전 책임지역 내에서 유해발굴 탐사에 들어갔다. 올해는 철저한 전장 고증과 참전 용사의 증언을 통해 정확한 탐사를 먼저 실시한 후, 2010년에 대대적인 발굴작전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겠다는 방안이다. 17사단의 책임지역은 전쟁 초기 김포에서 서울 영등포로 진입하는 축선을 방어하기 위해 운유산 전투, 강녕포 전투, 김포비행장 탈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져 수많은 국군이 희생된 지역이다. 또한 1950년 9월에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수복한 역사적인 전투가 벌어진 인천과 부천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개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청라지구를 비롯한 인천의 해안가에서는 지금도 심심치 않게 그 당시 사용했던 포탄과 탄환이 발견되고 있다.
사단 인사참모 김지덕 중령은 "6·25전쟁 발발 이후 60년이 다 되면서 당시 참전용사들의 나이가 80이 넘는 등 고령화가 지속되고 또한 각종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지형이 달라져 증언 확보와 고증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며 "향후 3~4년이 유해발굴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시기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인터넷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02)748-4999, 홈페이지 www.withcountry.mi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