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다음 ‘초이스’ 안 들어가요?”
“넌 힘들지 않아? 난 완전 머리까지 지끈거려.”
“손님 많을 때 확 당겨서 돈 벌어야죠. 같이 가요!”
‘여성전용 노래 바’ 잠입 3일 째. 밤 11시쯤 함께 ‘초이스(Choice·여성손님이 선수를 선택하는 것)’ 되어 새벽 4시에 손님을 보낸 후 도현(가명)이 또 ‘초이스’ 받자며 서둘렀다. 나는 따라가는 척하며 ‘선수(남성도우미)’들이 방에 들어갈 때 살짝 화장실로 빠졌다. ‘진상(골치 아픈 손님)’을 만나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선수’용으로 따로 마련된 화장실은 엉망진창이었다. 변기에는 토사물의 흔적들이 즐비했다. 음침한 공간은 번지르르한 ‘선수’ 생활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
5시간 넘게 폭탄주를 들이 붓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여성 손님의 비위를 맞춰주는 일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속은 쓰리고 두통이 계속 됐다. 아무렇지도 않게 바로 다음 ‘초이스’에 들어가는 도현이 대단해 보였다.
도현은 미남 형은 아니었지만 훤칠한 키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친구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이 일로 돈을 모아 일년이면 몇 번씩 혼자 여행을 떠났다. 자기 차도 가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도 일주일 간 국내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이 일을 말 그대로 ‘돈벌이’로 생각하고 있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처음 면접 때 에이스(대표 매니저)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이 일이 적성에 잘 맞는 친구들이 있나요? 전 숫기가 없어서…”
“그런 거 없어. 너 돈 벌려고 왔잖아. 열심히만 하면 돼. 네가 완전 연예인 급 외모면 대충 앉아만 있어도 되지만 아니잖아? 다들 자기 개성 살려서 하는 거야. 요즘 같은 때에 이만큼 돈 버는 일이 있어?”
선수들이 모두 뛰어난 외모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몇 명은 180cm가 훌쩍 넘는 키에 배우 같은 얼굴과 몸매를 가졌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초이스’를 받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한다. 기발한 자기소개를 개발하고 다양한 퍼포먼스를 연습한다.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고등학교 중퇴하고 뭘 하겠어요. 대학 나온 친구들도 호프집에서 알바 하는데 전 그나마 멀쩡하게 생겨서 이거라도 하는 거죠.”
올 해 스무 살이 되는 승기(가명)는 이 일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는 아직 일이 익숙하지 않아 ‘초이스’ 되었다가도 중간에 퇴짜 맞기 일쑤였다. 이 날도 게임에 걸려 손님이 외설적인 벌칙을 내자 대신 ‘폭탄주’를 마셨다가 손님에게 ‘선수교체’를 당했다. 선배 선수들은 그에게 요령 것 빠져나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는 풀TC(Full Table Charge)를 못 챙긴 것에 분해하며 선배들의 조언을 진지하게 들었다. 대학 졸업자도 88만원 세대로 내몰리는 시대에 중졸인 그의 선택에 뭐라고 비판할 수도 없었다.
선수들은 대부분 20살 중후반의 젊은 남성들이었다. 고졸자나 대학 중퇴·휴학 중인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군 제대 후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며 돈을 벌기 위해 ‘남자도우미’를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 한 친구는 낮에는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2~3 시간만 자면서 이 일을 하고 있었다. 역시 목적은 ‘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유흥비를 벌기 위한 친구들이 많았지만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한 번 여기서 돈을 벌다 보면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다. 까다로운 면접도 없고 근무일도 자유로우며 본인 하기에 따라 한달에 200만원~300만원도 넘게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거 불법 아니야?”
“다 등록하고 일 하는 거라 괜찮을 걸요. 보건증(건강진단결과서)도 끊어오잖아요.”
대부분의 선수들은 ‘남자도우미’ 일을 합법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실제로 면접에서 물어봤을 때도 이 업소는 ‘1종 유흥업소’로 등록 되어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원정’을 나가는 것이 불법이라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부천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1종 유흥업소로 등록하고 종업원을 제대로 등록했다면 성매매나 유사성행위가 없는 한 단속·처벌 대상이 아니지만 ‘원정’을 갈 경우에는 ‘직업안정법’에 의해서 단속 대상이 된다”면서 “‘여성도우미’와 마찬가지로 신고 접수에 의해서 상시적으로 단속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수들은 이 부분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도우미’가 남에게 내세울 일은 아니지만 불법적인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한 일이지만 처벌의 위험에 대해선 무감각 했다.
아침 7시. 나는 에이스에게 낮에 따로 하는 일이 생겨 앞으로 못 나올 것 같다고 말하고 가게를 나섰다. 밤새 담배연기에 자극받은 눈은 따끔거렸고 옷과 머리에선 찌든 냄새가 났다. 출근하는 사람들에 섞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현의 말이 떠올랐다.
“형. 힘내요. 그래도 우리 돈 버는 거잖아요. 지금 아니면 이 일도 못하는데 젊을 때 바짝 벌어 둬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