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1987년에 붓글씨로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고 쓴 친필 휘호가 14일 서울성모병원 안(眼)센터 앞 로비에 걸린다.

이 휘호는 김 추기경이 1987년 한 바자회에서 쓴 것으로, 당시 강남성모병원(현 서울성모병원) 안과부장으로 근무하며 안구기증 운동을 벌이던 김재호(73) 명동성모병원 원장이 받아서 22년간 자택에 고이 보관하다 기증한 것이다.

김 원장은 "병원에 오는 환자·의사·간호사들 모두가 김 추기경의 글씨를 보고, 자신의 눈을 기증해 다른 사람에게 등불을 달아주고 간 추기경의 뜻을 되새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자 우리나라 안구기증 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는 1985년부터 3년간 천주교 서울대교구 산하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소속으로 안구기증 운동을 벌여 안구기증자 5000명을 모았다.

서울대교구가 진행한 무료 개안수술 사업 팀장을 맡아 백내장 환자 등 1300여명에게 빛을 되찾아주기도 했었다. 그는 김 추기경에게 안구기증을 권했고, 1990년 1월 5일 추기경이 서울 반포동 팔레스 호텔에서 안구기증 서약을 할 때도 곁에 있었다.

김 원장은 1987년 10월 서울 방배동성당 신축 기금을 모으는 바자회를 앞두고 김 추기경의 휘호를 받았다. '김 추기경은 붓글씨를 거의 쓰지 않아서 친필 휘호를 받으면 희소성이 있다'고 판단해 김운회 방배동성당 주임신부(현 서울대교구 주교)와 둘이서 방배동의 모 식당에 붓·종이·먹 등을 준비해놓고 김 추기경을 모셨다. 붓글씨를 쓴다는 이야기를 못 듣고 온 김 추기경은 두세번 사양하다가, '성당 건립에 힘이 된다'는 간청에 붓을 들었다.

고(故)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친필 휘호를 서울 성모병원에 기증하기로 한 김재호 명동 성모안과 원장이 13일 붓글씨를 받은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김 원장은 "막상 바자회 당일엔 '거금' 50만원을 내고 김 추기경의 휘호를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며 "성당에 기부하는 셈치고 내가 직접 휘호를 사서 언젠가 적절한 때에 사회에 기증하려고 보관해왔다"고 했다.

서울성모병원은 김 추기경의 휘호를 소형 사진액자 등으로 제작해 판매하고, 그 수익금은 무료개안수술 사업에 보탤 계획이다. 휘호 기증식은 14일 오후 4시30분 서울성모병원 안센터에서 열린다.

한편, 김 추기경을 따라 안구 등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서약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 2월 16일 김 추기경이 선종한 이후 2달여 동안 장기기증 서약을 한 사람은 1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한 해 평균 기증 서약자(3000명)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윤경중(43) 생명운동부장은 "추기경이 남기고 간 사랑이 세상을 따뜻하게 데우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