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 수강(강혜정)은 병희(박희순) 집에 도대체 왜 갔을까.
A. 지민(승리)의 집이 직통으로 보이거든.
B. 사람이 오래전부터 안 사는 집 같잖아.
C. 전과 3범의 눈엔 호구가 보이는 법이야.
D. it is written.(운명 말고 설명할 길이 있겠어?)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첫장면처럼 4지선다형 문제로 시작해봤다.
지민을 쫓아다니다 '스토커'형 노숙녀가 된 수강. 아내가 살해된 뒤 자살 시도를 하는 병희. 황수아 감독은 수강-지민-병희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독특한 스타일의 미스터리 멜로 영화 '우리집에 왜왔니'< 사진>를 만들었다.
사건은 영화 초반 병희의 자살시도로 시작된다. 병희가 밧줄에 목을 매고 눈을 뒤집으며 '꺽꺽'대는 순간, 수강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한다. 병희는 목매달린 채 "누, 누구…?" 하는 표정을 짓는다. 수강은 병희를 끌어내린 다음 그를 밧줄로 꽁꽁 묶는다. 졸지에 인질 시세가 된 병희는 수강에게 묻는다. "왜 뭣 때문에 며칠 전부터 지내고 계신지…."
"예쁘지, 생활력 강하지, 뭐 빠지는 게 없지 않냐"는 '자뻑' 수강은 사실 일곱 살 연하의 지민을 사랑했다. 지민은 수강을 스토커 취급하고 졸지에 전과3범이 된 노숙녀 수강은 지민을 산 채로 파묻기로 결심하고 완전 범죄를 기획한다. 사연을 알게 된 병희는 또 묻는다. "그런 의미심장한 일을 왜 우리집에서…."
영화는 명랑만화과를 졸업한 로맨티스트의 귀를 즐겁게 해줄 명대사로 촘촘히 채워져 있다. 이야기가 '3차원'과 '4차원'을 오갈 때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박희순이 연기한 병희 캐릭터 덕분이다. 박희순은 영화 '넘버3'의 송강호 이후 말더듬 연기의 백미를 보여준다. 예쁜 척보다 미친 척 하는 게 더 매력적인 강혜정은 이번에도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선에서 자기만의 '광녀' 연기를 펼쳤다. 집단 자살 시도 장면에서 어눌한 주동자 역할을 맡은 오광록의 얼굴을 만나는 것도 이 영화의 작은 즐거움이다.
반면, 참신한 캐릭터에 비해 줄거리의 흡인력은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다. 영화 '우리집에 왜왔니'는 '무단 주거침입시 인사 요령'을 비롯해 '연하남 스토킹의 위법성', '가출 여성의 유흥업소 취업난', '화재 발생시 초동 대응의 중요성' 등을 관객들에게 일깨우지만 정작 중요한 건 버림 받은 사람들이 입은 상처와 그 치유에 있다. 병희는 죽은 아내에게 버림받았고 수강은 산 승리에게 버림받은 신세다.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와의 소통을 통해 다시 사랑할 수 있거나 혹은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자, 이제 정답 체크다. 수강은 병희 집에 왜 왔을까. 정답은 '명목상' A에 근접하고, '폐가'나 다름없기 때문에 B일 수도 있으며, 병희처럼 '협조적인 인질'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C에도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역시 우리가 영화를 만들고, 또 보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운명을 꿈꾸기 때문 아닐까. 영화는 9일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