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태양'해라."
"네?"
"너 여기서 쓰는 이름 '태양'으로 해. 본명 쓸 거 아니잖아?"
"아…네. 태양이요. 알겠습니다."
면접관은 날 몇 초간 쳐다보더니 뜬금없이 별명을 지어줬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현실감 없는 이름이 재밌기도 했다. 앞으로 난 여기서 선수(남성도우미) '태양'으로 불리는 것이다.
경기도 부천 유흥가에 위치한 한 여성전용 노래바. 밤 10시 반에 선수 면접이 시작됐다. 개인적인 질문에 대비해 몇 가지를 머리 속에 꾸며 준비해 갔지만 전혀 필요가 없었다. 면접에선 키와 이름, 연락처만 물어보고 선수 경력을 물었다. 처음이라고 대답하자 오늘부터 바로 들어가자며 교육을 시작했다.
"넌 이제 내 박스 소속이야. 박스는 그냥 팀이라고 생각하면 돼. 우리 박스가 12명으로 이 가게에서 제일 커. 박스 이름은 탑(Top)! 메인(매니저)은 3명이고 내가 에이스(대표 매니저)야. 여기 박스가 한 4~5개 있는데 넌 우리 박스만 신경 쓰면 돼."
각자의 매력을 뽐내는 선수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며 에이스에게 그들이 쓰는 용어에서부터 기본적인 술잔 세팅과 여성손님 응대 요령을 배우고 있는 도중. 오후 11시10분쯤 방문이 열리며 "3T(3Table·3번방) 초이스요!"라고 웨이터가 외쳤다. 내가 우물쭈물 거리자 메인이 일단 들어가서 초이스(Choice·여성손님이 선수를 선택하는 것)를 보라고 했다. 가서 직접 보고 배우라는 것이었다.
"반갑습니다!" 메인이 3번방을 열며 외쳤다.
5명씩 들어가 군대에서 번호 붙이듯 옆으로 한 명씩 자기소개를 했다. 금방 내 차례가 왔다.
"반갑습니다! 태양입니다."
가급적 웃으려고 했지만 가늘어지는 목소리에 어색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1번 키 큰 애, 내 옆에 앉고. 3번 대성이 닮았네. 이 쪽 누나 옆에 앉아."
"나이스 초이스! 짝짝짝!"
선택 된 둘을 남기고 나머지는 퇴장했다. 소개와 선택, 퇴장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선택된 선수들은 일단 풀TC(Full Table Charge)가 보장된다. 손님은 선수 1인당 10만원을 지불. 메인이 2만 원을 가져가고 선수는 8만원을 가지게 된다. 초이스한 손님은 시간에 관계없이 선수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손님에 따라 2시간이 될 수도 7시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건 그 날 그 때 운이다. 중간에 손님이 선수가 맘에 안 들어 교체하면 풀TC의 절반인 4만 원만 가지게 된다. 때문에 선수는 손님의 비위를 가게에서 나갈 때까지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시급 2만원은 되는 편이고 운 좋으면 하루에 24만원도 벌어간다. 요즘 같은 실업난과 불경기에 젊은 '꽃미남'들이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하다.
퇴장한 선수들은 교육을 받던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선수대기실로 들어갔다. 대기실은 약 50평방미터 정도 되는 크기에 한 쪽에는 소변기만 달린 화장실이 있고 소파가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앞 쪽에 놓인 40인치 정도의 TV에서는 케이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모두들 주로 박스끼리 모여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TV를 보거나 이야기를 나눴다. 몇몇은 뒤쪽에 놓인 탁자에 모여 카드게임을 시작했다. 포 카드로 보이는 게임은 빠르게 진행되며 제법 많은 현금이 오가고 있었다. 유흥으로 번 돈을 또 다른 유흥을 위해 탕진하는 모습이었다.
"원정가자!" 메인이 외쳤다.
원정은 근처 다른 노래바로 선수 지원을 나가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보도'와 같은 개념이다. 이 때는 풀TC 개념이 아닌 1시간당 1인 3만원을 받아 메인에게 1만원을 주고 2만원을 받는다.
우리 박스 선수 9명은 카니발에 꽉꽉 채워서 원정을 떠났다. 창가 쪽에 앉은 나는 불편한 자세로 밖을 내다보다 지나가는 경찰차에 혼자 깜짝 놀라 고개를 숨기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선수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5분 정도 지나 원정 노래바에 도착했다. 아까와 같은 초이스가 이루어지고 난 어김없이 선택받지 못했다. 돌아오는 차에는 인원이 넘치지 않았다.
다시 담배 연기 자욱하고 공기가 눅눅한 대기실로 들어갔다. 이 후 초이스는 계속 됐지만 선택은 받지 못했다. 룸과 대기실, 원정을 오가는 몇 시간 만에 심한 무기력함을 느꼈다. 초이스에 성공해 풀TC를 보장 받고 들어온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면서 계획성 있는 삶은 어려워 보였다.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겠지만 그만큼 쉽게 소비하게 된다. 20대 중후반인 선수들은 대부분 번 돈으로 최신형 휴대폰을 사고 옷과 액세서리로 자신을 꾸민다. 각종 도박에도 쉽게 손을 댄다.
밤 11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수많은 방과 원정에 불려 다녔지만 한 번도 '초이스' 되지 못하고 퇴근하는 나에게 에이스가 조언을 해줬다.
"미용실 가서 머리 스타일 바꾸고 면도할 땐 면도자국 안 남게 깔끔하게 해. 옷은 정장 스타일로 구해 입고 키 높이 구두에 깔창 깔고. 때 빼고 광내고, 몸에 투자 할수록 돈으로 돌아온다. 알았지?"
입력 2009.04.10. 11:21업데이트 2009.04.14. 15:42
100자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