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원점검, 면학행진, 보고, 경례… 여느 대학에서는 듣기 힘든 단어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학이 있다. 바로 국립 경찰대학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검색 사이트에서 '경찰대'를 검색하던 중학교 시절을 생각하니, 지금 내가 몸담은 모교가 이곳이라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경찰대학은 가·나·다 군과 무관하게 지원할 수 있고 이·문과의 제한 없이 매년 120명(남 108명, 여 12명)을 선발한다. 입학 후 60명씩 법학과와 행정학과로 나뉘고 3학년 진학과 동시에 법학과는 겅찰법학과 범죄수사학, 행정학과는 경찰행정학과 공공질서학으로 전공이 나뉜다. 커리큘럼은 법 과목이 주를 이루지만 폭 넓은 지식과 소양을 갖추기 위해 경찰작문, 영어, 제2외국어(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아랍어 중 택1), 사회학, 정치학, 자연과학, 역사학 등의 교양과목을 이수한다.
경찰대학만의 특수한 커리큘럼은 계절학기로 듣는 사격, 테니스, 골프, 수영 등 사회체육 과목과 운전(1종 면허), 컴퓨터, 무도(태권도, 유도, 합기도, 검도 중 택1)가 있다. 특히 무도는 졸업 요건 중 하나로 전교생이 2단 이상의 유단자가 돼 나간다. 일선 경찰서에서 경찰업무를 직접 체험하는 관서 실습은 2학년 겨울학기부터 실시된다.
전원이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24시간 함께 하므로 학생들 간의 일체감이 남다르다. 주말 외박 외에는 바깥과 단절되기 때문에 답답하다 느낄 수도 있지만 한 교수님의 "홍진이 떠도는 혼탁한 세파에서 해방돼 4년간 심신을 단련하니 얼마나 좋으냐!"라는 일갈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규칙적인 일과나 선후배 사이의 예의와 격식 등 '경찰대학은 이러이러하지 않을까?'라고 추측하는 이미지와 거의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된다. 미흡한 예절과 게으른 생활 태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할까? 필자도 주위에서 "경찰대 가더니 달라졌다"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그러나 상식을 벗어난 제도와 불합리한 폭력 등에 대한 우려는 버려도 좋다.
면회객이나 수험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경찰대의 특징은 늘 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강의실에서는 근무복을 착용한다. 1학년 초, 바짝 긴장한 동기들과 정자세로 앉아 소리 맞춰 "예, 알겠습니다"를 연발하던 우리들의 모습은 외래 교수님들에게도 꽤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긴장된 수업 분위기가 지속되지는 않지만 일명 '대출'이나 '무단 결석'은 물론 조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경찰대생이라면 정복에 대한 에피소드는 모두 하나쯤 있을 수 있다. 정모에 007가방까지 갖추고 정복 외박을 나가면 낯선 사람들이 길을 묻거나 말을 걸기도 한다.
"어느 학교죠? 여학생도 많이 뽑아요? 운동을 잘해야 갈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외부에서는 학생이 아닌 경찰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몸가짐이 조심스럽다. 사진전에 가서 도슨트의 해설을 오직 귀로만 들어야 했던 기억이 있다. 정복을 입고 차마 시민들의 시야를 가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몇 주 전 지하철역에서는 길을 모르는 분이 급한 일이 생겼는지 필자에게 잠시 짐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했다.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한 몸에 느낄 수 있었다.
흔히 리더가 되기 위해선 지·덕·체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진정한 전인교육 기관으로 경찰대학 만한 곳이 있을까? 게다가 학비 전액 면제, 의복·교재·비품·품위 유지비 등이 모두 국비로 이뤄진다. 그만큼 생활 속에서 늘 나라와 국민에 대한 봉사를 강조하는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닌 당연한 일로 여긴다. 또 경위 임용이라는 정해진 진로는 전문적인 경찰 지식과 지도자의 인격을 갖춘 인재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게 만든다.
혹자는 전경대·기동대 지휘관으로 대체 군복무 등 가시적인 혜택만을 위해 경찰대학에 지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학생도 졸업과 동시에 경찰로서 국민의 기대에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어깨에 얹고, 사회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는 사실이야 말로 경찰대학만이 갖고 있는 특별함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