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크(Balk)란 것이 상당히 애매한데 어떤 경우가 보크인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번 2009 기록강습회에서 어느 수강자가 따로 마련한 질의 응답시간에 던진 질문이다.
야구에서 가장 잡아내기 어렵고 판단하기 쉽지 않은 부분을 고르라면 야구관계자들은 대부분 투수의 보크를 먼저 꼽는다. 오랜 세월동안 야구경기를 지겨울만치 보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투수의 보크 순간을 제대로 짚어내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보크라는 것이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하고 반문할 수 있다. 야구규칙 8.05 항을 들여다보면 투수의 보크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장장 5페이지나 된다.
그 중에서 누구라도 쉽게 보크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경우를 먼저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 투구동작에 들어간 투수가 중도에 투구를 중지했을 경우
2) 투수판을 밟고 있는 상태에서 1루에 송구하는 시늉만하고 던지지 않은 경우
3) 타자가 타자석 안에서 충분한 타격자세를 취하기 전에 투구한 경우. 이를 일명 ‘퀵피치(Quick pitch)’로 부른다.
4) 투수판을 밟지 않은 상태에서 투구동작을 했을 경우
5) 투수가 불필요하게 경기를 지연시켰을 경우. 대개는 견제구를 필요이상 반복하다 보크로 선언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6) 투수판을 밟고 있는 투수가 공을 떨어뜨렸을 경우. 고의든 실수든 관계없이 보크가 된다.
7) 주자가 없는 루에 견제구를 던졌을 경우. 단 플레이상 필요한 경우라면 괜찮다.
8) 투수가 공을 갖지 않고 투수판 부근에 가로 서는 경우, 속이려는 의도로 해석되어 보크가 된다.
이상이 투수의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아 보이는 행동들이 보크에 해당되는 경우들이다. 이 정도가 전부라면 좋겠지만 보크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좀더 복합적인 곳에서 일어난다.
투수판을 밟고 있는 투수가 루에 견제구를 던지려 할 때는 던지고자 하는 루를 향해 발을 똑바로 내딛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위반했을 때와 투구동작 중 완전하다고 보여지는 정지동작 없이 막바로 투구했을 경우에 적용되는 보크 등이 그 논란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사례들이다.
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그 완성도가 달라 보일 수 있는,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을 전제로 하는 조항이라는 점에서 보크가 선언될 때마다 어필이 동반되는 모습을 자주보게 된다.
이번 WBC 아시아라운드 일본과의 1, 2위 결정전에서 봉중근이 4회말 무사 1루상황에서 지적당한 보크도 1루를 향해 견제구를 던질 때 발을 내딛는 방향과 정도가 얼마나 확실했는지의 판단을 가운데 두고 일어난 보크였다. 지난해 봉중근은 국내 투수중 최다인 6번이나 견제구로 주자를 잡아낸 바 있는 견제의 달인이다. 투구 중 주자에게 허용한 도루 허용률도 5할을 밑돈다.
이처럼 주자견제에 일가견을 갖고 있는 봉중근의 견제동작은 국내에서 이미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터인데, 비슷한 동작이 외국심판으로부터는 보크로 낚인 것이다. 왜 일까?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보크 적용규칙이 달라서였을까?
물론 이번 WBC 개막 이전에 보크 규정을 보다 엄격히 적용하겠다고 이미 공표한 바 있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의 해석도 가능하지만, 보크에는 규칙에 드러나 있지 않는 또 다른 기준이 숨어 있다는데에서 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투수의 습관이나 버릇이다. 2007년 다니엘 리오스(두산)의 투구동작을 놓고 중간에 확실한 한번의 정지동작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규칙을 들어 상대팀들의 어필이 비교적 잦았던 것을 기억한다.
타자가 타이밍을 맞추기 힘들게 되자 고의로 타석에서 타임을 걸고 발을 빼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리오스의 투구동작에 정지동작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 순간이 빨랐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리오스는 매번 그와 같은 패턴으로 투구를 했고 국내에서 그것은 그의 습관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프로야구로 건너가자마자 리오스는 같은 동작을 보크로 지적받고 말았다.
투구나 견제동작에 있어 좀더 확실함을 요구하는 한, 일 양국의 정도 차이도 있겠지만 우선은 눈에 설익은 리오스의 속성 투구동작이 일본 심판들의 시야에 더 크게 부각되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봉중근의 경우도 비슷한 경우다. 국내에서 아무 문제없는 것으로 인정받았던 견제동작이 바깥에서 보크로 잡힌 이유의 내면에는 어딘가 익숙치 않아 보이는 낯설음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물론 국내프로야구의 보크 적용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좀더 관대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애매하거나 불확실한 경우라도 투수가 타자나 주자를 기만하려는 의도가 아닌, 그 만의 버릇이나 투구습관이라면 어느 정도 묵인해주는 정서가 일반적 대세다.
과거보다 국제경기의 비중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시대흐름상 보다 더 엄격한 보크 적용으로의 전환이 점차 모색되겠지만, 적용의 주체인 심판원이나 룰적 손해 당사자인 선수쪽 모두의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아울러 외국심판 주재의 국제경기에 임하는 투수들로서는 투구나 견제구에 관련된 동작을 일으킴에 있어 보다 더 신중하고 조심성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메이저리그 급 타자들이 약체로 여겨지던 나라의 투수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이유가 바로 '낯설음' 때문인 것처럼, 보크 역시도 규칙보다 투수들의 습관적 동작에 대한 낯을 익힐 시간을 갖지 못한 외국심판들의 낯설음이 더 무서운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견제의 달인 봉중근도 보크의 덫에 걸릴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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