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지난달 새 서비스를 선보였다. ‘파워 미터(Power Meter)’라는 프로그램인데 시범 운용 중이다. 가정이나 사무실의 실시간 전력 사용량을 그래프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구글의 파워 미터를 가동시킨 후 에어컨을 켜면 전력 그래프가 치솟는 걸 보게 된다. 파워 미터를 써본 구글 직원이 파워 미터 홈페이지에 글을 썼다. “나는 토스터가 없어서 전기오븐으로 빵을 구워왔다. 파워 미터를 설치해놓고 토스터를 빌려 실험해봤더니 오븐이 토스터보다 무려 33배 전력을 썼다. 그날로 토스터를 샀다.”
국내에선 얼마 전 LS산전이 구글의 파워 미터와 비슷한 스마트 계량기의 모델 제품을 내놨다. 거실에 설치해놓으면 15분 또는 30분 단위마다 전기 소비량이 액정화면에 표시된다. LS산전 실험으로는 스마트 계량기를 단 집의 전기 소비량이 10~13% 줄었다.
구글 파워 미터나 LS산전의 스마트 미터는 '지능형 전력망(Smart Grid)'의 제일 초보 단계다. 나중엔 가전기기가 알아서 반응하게 만들어야 한다. 식기세척기에 전력 상황에 반응하는 마이크로칩을 달아놨다고 치자. 그러면 식기세척기는 주인이 설정해놓은 명령에 따라 전기료가 가장 싼 때를 골라 기계를 돌린다.
시스템이 완성되려면 공급자 쪽, 즉 발전소 송전망에도 지능을 깔아야 한다. 변전소, 송전철탑, 전봇대에 지능칩을 달면 전국 발전소·변전소가 통합 지능을 갖게 된다. 어느 도시의 전력 공급이 모자라고 어디가 넘치는지를 파악해 수급을 조절한다. ㎾h당 50원짜리 전기도 생기고 300원짜리 전기도 생긴다. 전기 소비량이 몰려 예비 발전소를 돌려야 하면 전기료가 저절로 비싸진다. 그러면 가전제품에 달린 지능칩이 오른 전기료에 반응해 가동을 멈추거나 약하게 만든다. 현재의 전력 공급 조절은 완전 수동(手動)이다. 여름철 전기 사용이 폭증하면 전기 주파수가 표준치인 60헤르츠보다 느려진다. 그러면 한전 상황실은 “전력이 모자라는군” 하고 예비전력인 LNG발전소를 돌린다. 주파수가 60보다 빨라지면 발전소 가동을 줄인다. 스마트 그리드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유행시킨 용어다. 이 시스템이 완성되면 모든 전기에 꼬리표가 달린다. 전국 가정·사무실·공장의 전기 소비 패턴이 낱낱이 파악된다. 전국 송전철탑과 전봇대에 자동제어 센서를 달면 원자력 전기, 석탄 전기를 구분해서 공급할 수 있다. 전기에 실시간 가격표가 다 따로 붙게 된다. 스마트 그리드가 완성되면 전기 소비를 10% 이상 줄일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전 국민을 한 시간 일찍 일어나게 만드는 서머타임으로 절약할 수 있는 전기(0.3%)의 30배 이상이다. 문명사회 모든 전기의 생산·소비 패턴을 바꾸는 세계 자동제어장치시장도 활짝 열릴 것이다. 반가운 건 대한민국이 이 마술(魔術)과도 같은 지능형 전력망 개발에서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 안에 지능형 전력망의 로드맵을 만들고, 내년엔 법을 정비하고, 2011년 시범도시 건설, 2020년까지 가전제품시장을 바꿔놓고, 2030년 전국 스마트 그리드화(化)를 완성시킨다는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반도체와 조선에 이은 또 하나의 ‘세계 최고’ 기술을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