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지난 24일 왕년의 천하장사 이만기 인제대 교수에게 한 대학생 씨름선수가 찾아와 한 수 지도를 부탁했다. 다름 아닌 대학씨름 80㎏급 최강자 임태혁(경기대). 지난해 전국체전, 대학장사씨름 1~5차 대회에 이어 올해 대학씨름 최강자전에 이르기까지 총 9개의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현재 개인전 40연승을 기록 중인 선수이다. 임태혁은 이 교수와 똑같은 1m83의 키에 유연한 허리를 바탕으로 화려한 기술씨름을 구사한다고 해서 '제2의 이만기'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가 인제대로 '원조' 이만기를 찾아나선 것이다. 곱게 빗은 옆 가르마에 살짝 처진 눈 등 귀여운 외모에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임태혁의 체중은 전성기의 이만기보다 9㎏이 적고, 가슴·허벅지·종아리 둘레 등도 아직 이만기에게 못 미친다. 그래도 이만기 교수는 "나도 처음엔 작은 선수에 속했다. 서서히 체중과 힘을 불려나가면 모든 씨름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며 임태혁을 반갑게 맞았다.
임태혁은 90㎏급에서는 통할 기술이 있다며 체급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천하장사가 되기 위해선 이 정도론 부족하다. 그는 "체중 120㎏이 넘는 선수에겐 아무 기술도 못 걸고 무기력하게 밀리는 자신이 한심하다"며 "천하장사에 오르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거듭 부탁했다. 이 교수는 그에게 4시간에 걸쳐 '골리앗을 이기는 법'을 전수했다.
① "일단 버텨야 산다"
"웃통 한번 벗어봐라." 이 교수의 지시에 셔츠를 벗자 가슴근육과 복근이 단단하게 잡힌 임태혁의 완벽한 '역삼각형' 상체가 드러났다. 그러나 이 교수는 쓱 한번 훑어보고는 "이 몸으론 거인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했다. "보이는 근육만 키워선 안 된다. 가슴 키울 시간에 등, 허리와 하체를 만들라"는 것이 이 교수의 첫 레슨이었다. "이기려면 일단 강한 힘에 쓰러지지 않고 버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통나무 같은 허리와 하체가 필수"라는 지적이었다. 임태혁의 허리와 종아리 둘레는 전성기적 이 교수보다 9㎝나 가늘었다.
② "골리앗의 하체를 공략하라"
이 교수가 양쪽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왼쪽 엄지가 훨씬 두꺼웠다. 씨름선수는 오른손으로 상대의 허리샅바를, 왼손으로 다리샅바를 잡는다. 임태혁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씨름선수들은 오른쪽 샅바를 잡는 손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고 배웠고 보통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힘끼리의 대결에선 허리샅바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월등히 키가 크고 힘에 세다면 허리 싸움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왼손으로 잡은 다리샅바로 거인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것이 필수이다. 이 교수의 왼쪽 엄지가 유달리 발달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교수는 "키가 크면 상대적으로 하체가 약하다. 안으로 파고들고 다리를 공략해야 중심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③ "씨름은 머리 싸움"
이 교수는 "힘으로는 덩치 큰 사람한테 절대 못 당한다"며 "혼자 힘자랑해보겠다며 (이)봉걸이 형(2m5, 135㎏) 한번 들어 메치려다가 오히려 당한 적이 있다"고 웃었다. 이 교수는 "씨름은 상대기술의 7~8수를 내다볼 수 있으면 백전백승"이라고 말했다. 두뇌씨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체중이 적어도 기본 체력에 두뇌와 스피드만 갖추면 누구든 천하장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원조' 이만기의 지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