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총선(중의원 선거)이라는 빙산에 부딪혀 침몰할 운명인 타이타닉호처럼 보인다." 올 연초 자민당을 전격 탈당한 와타나베 요시미(渡邊喜美) 전 행정개혁 담당장관의 독설이다.

와타나베 전 장관의 발언처럼 자민당이 창당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 내각 지지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데다 설상가상으로 당의 분열 조짐도 잇따르고 있다. 이대로라면 차기 총선 패배는 물론 당의 존폐 여부까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판이다. 각종 여론 조사를 보면 차기 총리 0순위로는 제1 야당인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가 꼽히고 있으며 당장 총선을 실시하면 민주당이 정권을 차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아소 총리의 리더십
자질 부족 비판 속 잇단 실언으로 국민적 불신
'귀족 내각' 꾸리고 화려한 밤 행각 '최악' 평가

주요 선진국들 중 유일하게 장기집권을 해온 일본의 자민당이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그 이유로는 무엇보다 아소 총리의 무능한 리더십이 꼽힌다. 아소 총리는 그동안 한자조차 제대로 읽지 못해 자질 부족이라는 비판을 들어왔다. 심지어 아소 총리 덕분에 한자 똑바로 읽는 방법을 다룬 서적이 불티나게 팔리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아소 총리는 또 1만2000~2만엔씩을 전 국민에게 공짜로 나눠주는 ‘정액급부금’과 우정민영화 등 주요 정책을 놓고 입장을 계속 번복해왔다. 이 때문에 ‘아소의 법칙’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일본 언론들은 아소 총리의 이런 행태를 ‘무소신의 전형’이라고 꼬집고 있다.

아소 총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추진했던 우정 민영화에 대해 “나는 사실 반대 입장이었다”라고 밝혔다가 당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비등하자 “나중에는 찬성으로 돌아섰다”며 꼬리를 내렸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아소의 말 바꾸기에 대해 “화가 나기보다는 웃음이 날 정도로 어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아소 총리는 특히 경기 침체에 허덕이는 국민들의 불신을 자초했다. 세습정치인 출신들로 이른바 ‘귀족 내각’을 꾸리는가 하면 정국을 고심해야 할 밤에는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 드나들었다. 게다가 “호텔은 비싸지 않다”면서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했다. 고령자 의료비에 대해 “몸 관리를 못해 골골하는 사람들의 의료비가 왜 내 주머니에서 나가야 하느냐” 등 실언을 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국민들에게 ‘희망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전정신과 자신감 결여는 물론이고 정책의 결정력, 내각의 통솔력, 당의 장악력 등 모든 분야에서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자민당 추락의 또 다른 원인은 경제 위기에 대한 해법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지난해 4/4 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3.3%를 기록했다. 연율 환산으로는 -12.7%로, 제1차 오일쇼크 직후인 1974년 1/4분기(연율 -13.1%) 이후 35년 만에 최악의 수치다.

또 올 1/4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국민들은 대부분 이대로 가다간 또 다시 ‘잃어버린 10년’이 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12조엔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내놓은 데 이어 올 상반기에도 25조~30조엔 규모의 추가 경기 부양책을 마련하고 있다.

아소 총리는 경제위기 대책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지지율을 어느 정도 만회, 총선에 나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민당 내부에서조차 아소 총리가 현재의 경제 위기를 돌파할 뾰족한 대책을 제시할지 여부에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55년 체제의 종식
1955년 자유당·민주당 합당 후 독주
장기 체제 한계, 내부서도 변화 모색

특히 자민당의 장기 권력 독점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 자민당 간사장은 "자민당은 반공과 경제성장이라는 창당 당시의 역사적 사명을 끝냈다"고 지적했다. 자민당은 1955년 11월 당시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해 만든 정당으로 그동안 일본 정치를 독점적으로 지배해 왔다. 이를 이른바 '55년 체제'라고 부른다. 만약 올해 실시될 총선에서 자민당이 패배하면 '55년 체제'가 구축된 이후 처음으로 투표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뤄지게 된다.

'55년 체제'는 지난 1993년 한번 무너진 적이 있었지만 투표 결과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당시 총선에서 자민당이 중의원 의석 중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자 사회당·신생당·공명당·민사당·일본신당·신당 사키가케 등 8개 야당이 연대해 비(非)자민 연립정권을 출범시켰다. 이때도 자민당은 의석 수로 볼 때 제1당이었다.

비자민 연립정권은 겨우 10개월의 단기로 끝났으며 1994년 6월 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 등 3당의 연립정권이 탄생함으로써 자민당이 다시 권력의 핵심세력이 됐다. 당시 총리직은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가 차지했다가 1996년 1월 자민당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 龍太郞)로 넘어가면서 일본 정국은 3년 만에 '55년 체제'로 회귀했다.

일본 정치 분석가들은 자민당이 1993년 잠시 정권을 내줬을 때 이미 역사적 사명을 다했으며 이후에도 정권을 계속해올 수 있었던 것은 장기 집권을 통해 터득한 통치 능력의 관성 덕분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아소 총리는 도쿠가와(德川) 막부 최후의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와 같은 존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자민당 일각에서도 장기 독주 체제가 역할을 다한 만큼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다.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가운데)가 당 대회에서 손을 쳐들고 총선 승리를 외치고 있다

자민당의 분열
개혁 소장파 중심인 反아소파 세력 결집
고이즈미 복귀 여부 놓고 주류 측과 대립

자민당 내부에선 이미 분열 양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전 관방장관을 중심으로 반(反)아소파가 세를 결집하고 있다. 또 고이즈미 전 총리의 개혁노선을 지지하는 그룹과 소장파 의원들도 독자적인 모임을 결성했다. 당내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町村)파를 이끌고 있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가 아소 총리를 중심으로 당의 결속을 호소하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현재로선 자민당이 내부 혼란을 수습, 총선 승리를 위한 반전 카드를 내놓기는 어려워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자민당에 아소 총리를 이을 대타가 없다는 점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가 2년 연속 총리에서 중도 하차한 상황에서 반대파가 아소 총리를 퇴진시킨다 해도 총선을 치를 마땅한 인물이 없다. 때문에 일부에선 정계은퇴를 선언한 고이즈미 전 총리를 다시 내세우자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지난해 둘째 아들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고 정치판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차기 총선에 나설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정계에 복귀할 경우 자민당은 고이즈미를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고이즈미의 재등장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는 마치무라파 등 자민당 주류는 여론이 더욱 나빠지기 전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국민의 신임을 다시 얻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중의원 의원 임기 만료인 오는 9월 10일 이전에 조기 총선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선 총선 시기가 2009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킨 직후인 4월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웃고 있는 민주당
'국민생활이 제일' 구호 내걸고 총선 승리 결의
'관료 지배 끝내겠다' 공언… 집권 이후 준비 나서

제1야당인 민주당으로선 총선 시기에 관계없이 올해가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아소 총리의 지지율은 10% 안팎을 밑돌고 있는 데다 자민당의 지지율도 20%대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40%대로 자민당의 두배를 넘고 있다. 민주당은 이에 따라 총선 승리를 위해 결의를 다지고 있다. 특히 오자와 대표는 정권 교체를 '세키가하라(關ケ原) 전투'에 빗대면서 전의를 다지고 있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1600년 천하를 얻기 위해 최후로 치렀던 전투로, 도쿠가와는 당시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전국을 완전히 평정하고 250여년간의 에도(江戶) 막부 시대를 열었다.

민주당은 현재 정권 획득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정권 교체 경험이 없는 유권자의 불안 심리를 누그러뜨리고 정국 운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다. 민주당은 또 총선에서 제시할 공약도 가다듬고 있다.

민주당의 정권 구상 핵심은 자민당의 장기체제를 움직였던 관료 주도 정치 형태를 개혁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그동안 '관료 사회'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관료들이 정책을 좌지우지해왔다. 오자와 대표는 "관료 지배 사회를 끝내고 국민이 지배하는 일본을 만들 것"이라면서 "여야 정치인을 정부 부처에 파견해 국정 운영을 정치권 주도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했다. 현재 각료와 부대신 2명·정무관 3명 등 6명의 정치인이 일하는 각 성청(한국의 부처에 해당)의 정무직을 크게 늘려 정치인 주도의 책임정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와 함께 '국민생활이 제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자민당의 실패한 정책 때문에 지방 경제가 피폐해졌고 빈부 격차가 심화됐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매월 어린이 수당 2만6000엔 지급과 함께 휘발유세의 잠정세율 폐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민주당은 또 고용 안전망 재구축을 핵심으로 하는 긴급 고용대책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대외 정책에 있어서도 민주당은 미국을 추종하는 외교 노선을 바꾸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오자와 대표는 "미국과 일본은 앞으로 보다 대등한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특히 민주당은 주일미군 지위협정 개정과 오키나와(沖繩)의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이전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민주당의 이런 정책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도 일본의 정권 교체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일본을 택하면서 오자와 대표를 면담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국무장관이 일본 야당 대표와 개별 회담까지 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이는 오바마 행정부도 민주당이 집권하면 미국에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가 될 것을 대비한 사전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일본 정국이 어떻게 변할지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지만 차기 총선이 정계 재편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로선 자민당이 총선에서 가까스로 과반수를 획득한다 해도 정국을 안정적으로 주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자민당이 패배할 경우 '55년 체제'가 붕괴되면서 일본 정국은 급변할 가능성이 높다. 태풍권에 들어간 일본 정국이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

자민당 장기 집권 배경
중선거구제 활용해 파벌 간 공천 나눠 먹기
농어민·중소상공업자 조직화로 기반 다져

일본 자민당은 하나의 정당이 아니라 ‘소수당들의 연합’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자민당은 철저하게 파벌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자민당이 반세기 동안 장기집권하면서 ‘자민당 총재의 교체가 정권 교체’라는 등식이 성립해 왔다. 자민당에 파벌이 유지돼온 이유는 중선거구제도에 기인한다. 한 지역구에서 2~4명의 의원을 선출하다 보니 자민당은 2~4명씩을 출마시킨다. 이에 따라 중선거구제도는 실질적으로 비례대표제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공천은 파벌 간 경쟁과 나눠먹기로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의원들 입장에선 파벌에 끼지 않고는 공천을 받을 수 없다. 파벌 정치는 일본 정치의 아킬레스건인 금권정치와 정경유착 및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자민당이 정권을 유지해온 또 다른 배경은 지방과 농촌의 공고한 지지 기반이다. 자민당의 핵심지지 세력은 농어민과 영세 중소상공업자들이다. 자민당은 이들을 각종 조합과 협회 등으로 조직화해 탄탄한 표 기반을 다져왔으며 이를 위해 정책적 특혜도 제공했다. 농촌 지역에 의원 수가 상대적으로 많이 배분돼 있는 선거구 체계도 자민당의 장기 집권에 유리하게 작용해왔다. 대를 이어 의원이 되는 세습 정치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현재 농촌과 지방의 친(親)자민당 조직이 상당히 약화된 상태다.

지방의 반관반민(半官半民) 단체들이 대거 민영화됐고, 경제 위기로 각종 협회나 조합에 대한 지원도 끊겼다. 민주당도 지방 조직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농촌에 대한 지지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앞으로 자민당의 파벌 정치와 지지 기반이 어떻게 변화할지도 차기 총선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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