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10시 서울 삼성동 봉은사(奉恩寺)에 있는 60㎡(18평)짜리 창고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50~60대 '보살'(불교 여신도) 14명이 전날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산 국산 돼지고기 20㎏을 고추장에 버무려 지지고 볶는 중이었다. 사찰 음식에서 금하는 파·마늘·양파도 송송 썰어 넣었다. 이때 주방 문이 벌컥 열리더니 봉은사 맥산 스님이 들어왔다. 스님은 화를 내는 대신 활짝 웃었다.
"아이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좋겠네."
봉은사는 1999년 9월부터 삼성동·청담동·논현동 일대에 사는 65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35명에게 밑반찬 배달을 해왔다. 자원봉사자 20명이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국과 세 가지 반찬을 만들어 독거노인 집에 배달한다.
처음에는 야채와 나물만 들어 있는 사찰음식 그대로 배달했다. 그러나 노인들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봉은사는 2000년 자체 회의를 거쳐 사찰 안 창고를 주방으로 개조해 고기와 생선을 굽기 시작했다. 일부 스님과 신도들이 "신성한 사찰에서 무슨 짓이냐"고 항의하자, 당시 주지 스님이던 원혜 스님이 "중생을 돕는 일이니 세상의 흐름대로 가자"고 다독였다.
자원봉사자 윤정순(64·강동구 명일동)씨는 "10년 동안 자원봉사 하는 동안 독거노인 여섯 분이 돌아가시고, 세 분은 치매로 보호소에 가셨다"며 "그때마다 돌아가신 시부모님, 친정아버지 생각이 났다"고 했다.
7년 동안 반찬을 받아온 오모(81·강남구 삼성동) 할머니는 이날 자원봉사자가 건네는 반찬 가방을 받아 들고 "아이고, 보살 왔네! 반찬 왔네!" 하고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