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어촌 오지에서 '학교'는 교육은 물론 문화와 소통의 중심 역할도 맡고 있다. 학생수가 감소해도 오지에 학교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도회지로 빠져나가면서 본교는 분교로, 분교는 폐교로 바뀌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강원도의 한 초등학교가 수도권 학생들을 대거 유치하면서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벽지학교 생존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강원도 홍천과 양양을 잇는 구룡령 아랫자락에 있는 양양군 서면 공수전리 상평초교 공수전분교. 지난 12일 5명이 졸업, 재학생이 6명으로 줄었다. 교육청의 폐교 검토 대상이 될 위기를 맞은 것이다.
하지만 이 학교는 요즘 수도권 학생들로 활기가 넘치고 있다. 새 학기에 이곳으로 전학 올 서울·경기 지역 학생들이 미리 학교를 둘러보느라 시끌벅적하다. 이들은 올해부터 시작되는 도농(都農) 문화교육연구소(문화체육관광부 등록 비영리 단체) 산하 '철딱서니 양양 산촌유학센터'에 지원한 학생들이다.
원동진(13·서울 도봉구)군은 "자연에서 뛰어노니 좋고, 학원을 안 다녀 더 좋다"고 했다. 원군은 서울 누원초교를 다니며 영어·태권도·수영·논술 등 8개 학원에 다녔다고 했다. 이지민(12·경기 안양시)양은 "친구들과 함께 자고, 먹고, 뛰놀 수 있는 이곳이 너무 좋다"며 웃었다.
공수전분교에는 올해 20명의 수도권 학생이 전학 온다. 도농문화교육연구소가 작년 양구에서 시작한 '철딱서니 산촌유학센터'를 올해 양양으로 옮긴 덕이다. 도시와 농촌, 노인과 아이 사이의 문화를 소통하자는 취지로 만든 산촌유학센터는 시골에서 체험활동 위주의 '방과 후 교육'을 제공한다. 여기 입학하는 학생들은 자동으로 지역 학교에서 공교육을 받게 된다. 전입생 20명 중 8명은 양구를 거쳐서, 나머지 12명은 처음 양양으로 오는 수도권 학생들이다. 대부분 방학 중 단기캠프를 통해 이 센터를 알게 됐다가 마음에 들어 전학까지 결심한 경우다.
공수전분교는 1946년 개교 이후 1970년대까지 전교생 90명 안팎을 유지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학생들이 줄기 시작해 1989년에는 25명까지 내려갔다. 그해 분교가 됐고, 이후 20명을 넘지 못하다 올해 6명만 남게 됐다.
학교 측과 마을 주민들은 폐교 위기를 벗어날 마지막 기회로 '산촌유학' 프로그램을 잡았다. 작년 11월 양구 산촌유학센터를 찾아가 양양으로 옮겨와 달라고 요청했다. 산촌유학센터 측도 시설 확장에 어려움을 겪다 뜻이 맞는 양양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가 수도권 학생 20명의 전입이다. 학생들이 기숙사처럼 사용할 유학센터는 마을 휴게소를 새로 단장해 방 6개와 회의실 1개, 식당과 주방 등으로 꾸몄다. 리모델링 비용 3000만원은 양양군이 댔다.
전학 올 학생들은 정규수업을 마치면 본격적인 '산촌 유학생' 신분이 된다. 센터 교사 5명과 함께 봄에 모내기 하고, 여름에 풀 뽑고, 가을에 추수하는 벼농사를 체험한다. 초겨울에는 자신들이 재배한 배추로 김장을 담가 마을 내 외로운 노인들에게 전달한다. 매달 한번씩 가까운 설악산과 점봉산으로 산행도 간다. 주변 산에서의 산나물 캐기도 가슴 설레는 프로그램이다. 강원도 자연을 배경으로 요가와 전통무예 같은 심신 수련도 한다.
지역 축제참가와 문화탐방을 통해 주민들과도 어울린다. 학생 한명이 마을 한 가구씩과 자매결연해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자와 손녀의 인연도 맺는다. 방과후 특기적성 교육으로 영어·클래식기타·리코더·중국어 같은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방학 중에는 '중국 학생들과 함께하는 캠프'와 '인도네시아 현지 학교 어학연수'도 할 계획이다. 비용은 학생 한명에 한달 60만원이지만, 도시의 학원비 등을 생각하면 그리 비싸지 않다는 게 학부모들 반응이라 한다.
건축설계 일을 하다 7년 전부터 아이들이 좋아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김현덕 산촌유학센터장은 "아이들이 콘크리트가 아닌 자연과 문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해주고 스스로 생활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하고, 마을 어르신들과 마음을 나누게 하는 것도 주요 교육과정"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