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시장이 연초부터 요동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경기 침체 속에서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업체 간, 장르 간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시장이 재편될 조짐까지 보인다. EA와 THQ처럼 대작 게임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돈을 벌었던 대형 업체들은 경기 불황과 함께 큰 손실을 기록하면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지면서 50~60달러를 주고 게임 프로그램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소니도 값비싼 차세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가 극심한 판매 부진에 빠지면서 게임산업에서 철수한다는 소문까지 들리고 있다. 반면 무료나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온라인 게임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경기 불황으로 외부 활동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이 PC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호재다. 일찌감치 온라인 게임산업을 발전시켜온 우리나라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쓰러지는 게임업계 공룡들

세계 2위 게임업체 일렉트로닉아츠(EA)의 존 리치티엘로 회장은 이달 초 투자자들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EA가 2008년 4분기에 무려 6억4100만달러(약 8874억원)의 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리치티엘로 회장은 "큰 손실을 기록한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며 "우리 게임이 인기를 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A는 연간 실적에서도 4억540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EA는 즉시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전체 직원의 11%에 이르는 1100명을 감원하고 전 세계 개발 스튜디오 가운데 12곳을 폐쇄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EA는 2010년까지 5억달러의 운영비용을 절감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5위권 게임업체 THQ의 상황도 심각하다. 4분기에만 1억918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간에 1550만달러의 이익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급전직하로 추락한 것이다. THQ는 이익뿐 아니라 매출까지도 전년 동기 대비 30%나 감소한 3억5730만달러를 기록하면서 성장 동력을 잃었다. THQ는 2010년까지 전체 직원의 38%에 이르는 600명을 감원하고 2억2000만달러의 운영비용을 절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퇴조

가정용 게임기의 강자 소니는 2008년 4분기에 179억6000만엔(약 269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연간 기준으로도 사상 최대인 2600억엔(약 3조9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14년 만에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는 TV사업 부진 탓이 크지만 게임 부문의 몰락도 눈에 띈다. 소니의 게임 부문은 지난 4분기 전년 동기 대비 32.2% 줄어든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

시장 조사기관 NPD그룹에 따르면 소니는 추수감사절 쇼핑 대목인 지난해 11월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플레이스테이션3를 37만8000대 팔았다. 전년 동기 대비 8% 정도 감소한 수치다. 경쟁 게임기인 닌텐도 위(Wii)가 전년 동기 대비 108% 증가한 204만대,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360이 전년 대비 8% 증가한 83만6000대를 판매한 것을 감안하면 처참한 성적이다. 이는 소니가 전통적으로 마니아를 위한 고가전략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플레이스테이션3는 가장 저렴한 모델이 Wii보다 150달러나 비싸다. 경기 불황기에 선뜻 구입하기 힘들다.

온라인 게임에는 불황이 기회

로이터통신은 지난 2일 '불경기가 온라인 게임업체의 서쪽(west) 공략을 돕는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로이터는 이 기사에서 "경제위기로 미국과 유럽에서 저렴한 게임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아시아 온라인 게임업체들이 희망에 부풀어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에서 금융위기의 여파로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진 2000년대 초에 온라인 게임산업이 급성장했던 것처럼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온라인 게임업체들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온라인 게임의 필수 인프라인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IT 시장 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2007년 54%에 불과했던 미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은 2012년에 77%로 높아질 전망이다.

해외 시장 2차 공략 성공할까?

온라인 게임을 위한 현지 인프라와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그동안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 성공적인 사업을 펼쳐온 우리나라 게임업체들이 올해 본격적으로 미국과 유럽을 공략한다.

네오위즈게임즈는 국내에서 매월 2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인기 야구 게임 '슬러거'를 4월 미국 메이저리그 시즌 개막에 맞춰 현지 서비스할 계획이다. 현지 게이머들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메이저리그 야구팀의 라이선스를 획득해 선수와 구장 등을 현지화했다.

넥슨은 2005년부터 미국에서 서비스 중인 온라인 캐주얼게임 '메이플스토리'가 동시 접속자 수 6만명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올해는 1인칭 총싸움게임 '컴뱃암즈'로 여세를 몰아간다. 지난해 10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이 게임은 5개월 만에 회원 수 120만명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예당온라인은 MMORPG '프리스톤테일2'를 올 상반기 공개 서비스한다. 이 게임은 지난해 미국에 수출되면서 순수 계약금으로만 180만달러를 받아 화제를 모았다. 예당온라인은 비행슈팅 게임인 '에이스온라인'으로 영국과 독일 등 유럽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엠게임은 올 상반기에 무협RPG '풍림화산'을, 하반기에 MMORPG 신작 '홀릭2'를 각각 서비스한다.

네오위즈게임즈의 최관호 대표는 "북미와 유럽 게임 시장에서 온라인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작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은 오히려 매우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