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도쿄특파원

일본에서 한국 깡패영화를 보면, '번역을 저렇게 하면 무슨 재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다. 말 한마디로 관객의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다채로운' 상욕들을 몽땅 '고노야로'(이녀석)나 '바카야로'(바보 녀석) 정도로 번역하기 때문이다. 귀를 막고 일본어 자막만 읽으면 서울 초등학생 저학년 싸움만도 못하다.

하지만 번역 문제는 아닌 듯하다. 뒷골목 막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일본 야쿠자 영화를 보아도 상욕이란 '바카'나 '야로'를 세고 비열하게 말하는 수준에 그친다. 간혹 쓰이는 다른 욕설들도 우리말로 풀면, '멍청이' '얼간이' '똥싸개' '돼지 녀석' 정도의 의미다. '육×랄' '씨×'처럼 생명을 위협하거나 신체 일부를 조롱하는 욕설을 과문한 탓인지 들어본 일이 없다.

일본에선 '욕설'을 '아쿠타이(惡態)' 또는 '와루쿠치'라고 한다. 단어가 있는 것을 보면 욕설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일본인에게 물어도 '바카' '야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어를 아는 일본 지인 가운데에는 "한국에서와 같은 상욕은 일본엔 없다"고 잘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니 일본에도 욕설이 없을 리 없다. 일본 전통의 축제(마쓰리) 가운데 '아쿠타이마쓰리(惡態祭)'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욕설로 싸워 욕설로 이기면 이기는 쪽에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고 하니, 예부터 다양한 욕설이 오갔음에 틀림없다. 일본의 욕설만 한 권에 묶은 책('빛나는 일본어의 욕설'·1997년)까지 있다.

하지만 이들 욕설을 문화 공간은 물론 일상의 생활 공간에서도 듣기 힘든 것이 우리와 다른 듯하다. 욕설을 멀리하는 문화가 일상을 바꿨는지, 욕설을 입에 올리지 않는 일상이 문화를 바꿨는지 모르지만 일본의 욕설은 아무도 찾지 않는 사전 속에 포박당한 사어(死語)로 쇠퇴하고 있다.

재일한국인·중국인·빈민·장애인 등 소수파를 괴롭히던 '차별어' 역시 죽은 언어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에게 "고지키(乞食·거지)"라고 말하면 "엣!" 하면서 웃는다. 공적 영역에서 워낙 오래 금기시됐기 때문에 귀에 생소한 낡은 언어 인상을 주는 것이다. 이(異)민족을 경시하는 말들도 일부 편협한 사람들의 음습한 술자리 안에서 떠돌 뿐이다.

공적인 강제도 있었던 모양이다. 옛날 이야기이지만 가마쿠라(鎌倉)막부(1185~1333년)는 무가법(武家法)에 '욕설죄'를 만들었다. 막말꾼들을 매로 다스린 것이다.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엔 '인권'의 차원에서 사회적 규율로서 더욱 엄격하게 분위기를 다잡은 듯하다. 2002년엔 '바보'란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유명 소설을 삭제하는 소동을 벌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욕설을 대하는 일반 정서가 아닌가 한다. 일본에선 인간을 평가하는 말로 '품(品)이 나쁘다·좋다'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품격이 없다·있다'의 뜻인데, 만약 누군가에게 "품이 나쁘다'는 말을 들으면 그만큼 치욕스러운 순간이 없다. 이런 평가가 가장 자주 적용되는 경우가 바로 막말이다. 욕설이든 차별어든 비속어든 막말을 올리는 순간, 사회적 평가의 영역에서 낮은 품격을 뜻하는 '게힌(下品)'의 영역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말하는 언어 수준은 사회의 품격을 반영한다. 국민 전체가 볼 수 있는 공중파 방송이 막말로 떠들어댄다면, '그 사회는 갈 데까지 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