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순이 7명을 살인했다고 자백한 30일, 강호순의 연쇄살인의 베이스캠프로 지목된 축사가 있는 수원시 권선구 당수6통 마을은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감돌았다. 사건 소식을 접한 인근 주민들이 현장을 찾기도 했지만, 대체로 외출을 자제하려는 모습이었다.
◆소 한 마리 죽은 채 방치돼 있어
강호순이 운영하던 축사에는 맷돼지 10마리가 남아 있었다. 한때 20여 마리의 소도 함께 키웠지만 동업하던 장모씨가 지난 29일 남은 소를 모두 처분했다고 한다. 축사 바로 옆에는 죽은 소 사체가 방치돼 있었다. 입가에 선홍색 피가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한 주민은 “28일쯤 소가 죽어 동네 사람들이 축사에서 꺼내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강호순과 가깝게 지내던 김모씨는 “검거 3~4일 전까지 축사에 나와 전혀 내색하지 않고 태연하게 일을 하고 돌아갔다”며 “검거된 이후에는 축사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축사 바로 옆 폐가(廢家)에는 경찰의 출입금지를 뜻하는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다. 사건 해결의 중요 단서가 됐던 여성의 머리카락 등이 발견된 곳으로, 사료와 생수통이 쌓여 있을 뿐 사람이 전혀 살 수 없는 곳이었다.
폐가에는 조그만 닭장도 있었다. 닭 한 마리만 홀로 남아서 집을 지키고 있었다. 김모씨는 “강호순이 평소에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자주 이야기 했다”며 “원래 축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소가 몇 마리 없었지만 소를 팔아 돈을 벌기 위해 20여마리까지 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반월 저수지 인근에 원두막을 짓고 낚시꾼들을 대상으로 옥수수, 과일, 꿀 등을 팔기도 했고, 축사 근처에서는 양봉을 치고 마(麻)를 키우기도 했다”고 전했다.
◆ 방화 사건에 대한 소문도 돌아
강호순의 축사 뒤편에서 젖소를 키우는 김모씨는 마을에서 강호순과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
김씨는 “처음 두 달 동안은 말을 붙이기도 어려웠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강호순이 어느날 맥주를 사 들고 찾아와 “숫기가 없어서 잘 나서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은 형 아우 사이로 친하게 지냈다.
김씨는 “강호순이 이사왔을 때 소 장사를 하는 형님으로부터 강호순을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보험금을 노리고 장모와 부인을 죽인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과 축산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실제로 이런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김씨도 처음에는 의심스러웠지만 강호순과 지내면서 절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김씨는 강호순이 축사에 여자들을 많이 데려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가 직접 본 사람은 두 명 정도였다. 한번은 김씨가 일하는 하우스로 한 여자를 데려와 결혼할 사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 “사적인 일은 잘 얘기 안했지만, 한번 여자 관계에 대한 털어놓은 적이 있다”며 “결혼을 하고 싶은 여자가 있는데 애가 둘이라 고민스럽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연상 1명, 연하 1명과 교제 중이었으며, 잘되고 있다는 말도 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다”면서 “피해자 연모양이 살해될 때 즈음에는 (사체가 발견된) 근처에 친구를 만나러 자주 다녔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11월 중순쯤에는 경상도로 선을 보러 간다며 4일 정도 축사를 비웠던 걸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또 “겨울 동안 소에게 먹일 볏단을 세우는데 새벽 3시까지 혼자서 일을 하기도 했다”며 “경찰이 축사 주변을 조사하러 왔을 때 내가 볏단도 조사해봐야 한다고 말했지만 아직 볏단 속을 뒤져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 동네 주민들,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은 기분”
기자가 가본 당수 6통 마을은 주변에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심 속의 외딴 섬과 같았다. 마을 초입에서 강호순의 축사에 가기 위해서는 일차선 도로를 따라 가야 했다. 슈퍼마켓도 하나 없는 이 동네엔 현재 42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행정구역상 수원시 권선구에 속해있는 이 마을은 1994년 이전까지는 화성군 반월읍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웃 마을은 그린벨트 제한이 풀리면서 아파트와 상가들이 들어섰지만, 유독 이 마을만 그린벨트가 풀리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마을 주민 대부분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이웃이 그런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으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지역 토박이들의 말에 따르면 당수리는 대대로 범죄 없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표창을 받기도 여러 차례. 하지만 강호순 사건의 시작점으로 지목되면서 졸지에 범죄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주민들 ‘범죄하기 금싸라기 땅’
마을 초입에 위치한 한 음식점에는 주민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강호순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마을 출신으로 현재 안산에 거주하고 있는 이성철(45)씨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왔다.
이씨는 "이 지역은 완전 금싸라기 땅이다. 땅값이 비싸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체를 묻기 딱 좋은 땅이라는 말이다"며 "화성시 매송면, 수원시 금곡동, 당수동, 군포시 둔대동, 안산시 성포동 등이 맞닿아 있는 이 지역은 범죄 취약지역이다. 이 지역 대부분이 30년 이상 그린밸트로 묶여 있어 개발이 더디고, 인적이 드문 야산이 많아 범죄가 빈번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유입 인구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그 반면에 치안 시설은 그에 못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치안력 부재인 외딴 섬
이씨는 “사실상 치안력이 미치는 범위도 문제다”며 “화성시 매송면의 경우 관할 경찰서인 서부서까지 40분 가까이가 걸린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형사가 담당하고 있는 사람 수가 지나치게 많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역시 이 지역 토박이인 조동준(48)씨는 “사실 그린밸트를 해제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동네 주민들이 안전하게 밤길을 다닐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음식점 주인 조교택(44) 씨는 “두 달여 전 실종 사건이 일어나고 마을 입구에서 검문이 있고 난 이후부터 매상이 바닥을 치고 있다”며 “수사를 하는 것도 좋지만 지역 주민들의 생계도 고려해 줘야하지 않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