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대 후반 노래 '사랑은 유리 같은 것'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 1990년 9월 결혼발표와 함께 돌연 잠적해 숱한 소문을 남겼던 원준희(39)가 한국을 떠나야 했던 이유와 그 동안의 삶을 솔직히 털어놨다. 원준희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연예계 생활을 접고 미국생활을 결심하기는 정확히 2주가 걸렸다. 연예계란 곳이 너무 갑갑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하루 3~4개의 스케줄 때문에 내 생활은 전혀 없었다. 당시 아이돌 스타란 신분 때문에 (소속사에) 모든 것이 구속돼 나의 삶이란 없었다. 이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하루하루 버티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당시 난 정말 나를 못 알아보는 곳으로 숨고 싶었다"며 "그러던 중 우연히 가수 현미 선생님의 자제분을 알게 됐고, 만남을 가진지 3달 뒤 그가 프러포즈를 했다. 처음엔 갈등했지만 (재미교포인 그와)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어 승낙했다"고 말했다.
당시 떠돌던 '납치설' '임신설' 등 온갖 루머에 대해선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다. 아이돌 스타란 신분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구속받아야 했던 나의 삶을 참을 수 없어 도망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원준희는 그동안의 미국 생활 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미국으로 떠난 뒤 6개월 동안은정말 즐거웠다. 마음껏 돌아다니고 생활이 굉장히 편했다"면서도 "6개월이 지나니까 슬슬 노래를 부르고 싶고, 무대도 그리워지더라"고 했다. 그는 "혹시 방송생활이 떠오를까봐 2년 동안 TV를 멀리하기도 했다"며 "열심히 집 밖을 돌아다니며 현지 사람들과 만나 생활영어를 익혀나갔다. 미국 정착 4년 만에는 미국의 유명 패션학교에 입학, 패션공부도 했다"고 전했다.
원준희는 1994년 첫 딸을 얻은 뒤 또 한번 찾아온 우울증 때문에 결혼생활의 위기까지 경험했다는 뜻밖의 고백도 했다. 원준희는 당시를 회상하며 "향수병과 임신으로 중단한 공부의 아쉬움으로 신경이 예민해진 시기였다"며 "특히 남편의 새 사업 준비로 인해 주변 상황이 어지럽다 보니 날이 갈수록 부부싸움의 횟수는 늘어갔고, 이로 발생된 마음의 상처는 커져만 갔다"고 전했다. 그는 "이혼이란 극단적인 생각도 했지만, 둘째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려 노력했다"고 전했다.
그러던 중 둘째 아이 임신 중에 남편이 강도의 총에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비로소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사랑하나 보다'란 생각이 들더라. 남편이 건강을 회복하고 나서야 시련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후 원준희는 2004년 셋째 아이를 출산했다.
원준희는 지난해 한국땅을 다시 밟으며 '애벌레'란 신곡을 발표했다. 최근엔 싱글 '사랑해도 되니'를 발표해 며칠 사이 온라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원준희는 갑갑했던 연예계에 다시 돌아온 이유에 대해 "살다 보니 히트곡 하나뿐인 현실이 너무 아쉽더라. 스타가 아닌 노래쟁이가 되고 싶어서 다시 가수로 리턴했다. 앞으로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노래로 팬들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