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29일 창당 1주년 회견을 갖고 "국회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통일 이후 국회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현재 299명인) 국회의원 숫자를 30% 줄여 210명 내외로 하자"고 제안했다. 이 총재는 "국회의원 수 축소를 국가 개조와 정치 개혁의 틀 속에서 진행하자"고 했다. 경제 위기가 국민 개개인의 고통으로 밀려오는 순간에도 폭력 난장판을 벌이고 국정을 외면하는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의 염증(厭症)이 날로 더해지는 가운데 처음으로 정치권에서 국회의원 감축을 본격 거론한 것이다.

국회의원 수 299명은 현행 공직선거법 21조에 규정돼 있다. 1988년에 정했던 이 숫자는 IMF 직후인 2000년 16대 국회 때 273명으로 줄었다가 2004년 17대 국회에서 슬그머니 원위치 됐다. 국회의원 수는 1980년 헌법 개정에서 '200인 이상'으로 정하기 전인 6·7대 국회 때 175명이 정원인 때도 있었다. 국회의원 숫자는 여야가 어떻게 합의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국회의원 수를 정하는 데엔 인구와 경제 규모, 정부 예산, 국민 정서 등이 고려된다. 인구 4900만명인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수는 인구 3억명의 미국이나 인구 1억3000만명의 일본과 비교해 너무 많다. 우리 국회의원 1명은 인구 16만여명을 대표하고 있지만 미국 하원은 69만여명, 일본 중의원은 27만여명을 대표한다. 미국 하원은 인구 증가에도 불구하고 1911년부터 의원 숫자를 435명으로 고정해두고 있고, 일본의 집권 자민당은 오는 9월 총선에서 의원 수 30~40% 축소를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다.

국민은 IMF 때보다 훨씬 혹독한 경제 한파에 잔뜩 움츠러든 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국회라고 해서 선진국보다 훨씬 많은 국회의원을 그대로 둔 채 위기의 무풍(無風)지대에서 호사를 누릴 순 없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도 14년이 지나 지방 의원의 역할이 국회의원과 중복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교통·통신·인터넷이 발달한 상황에서 "관할 구역이 지나치게 넓어지면 국회의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234개 시·군·구를 70여개 광역 단위로 재편하는 것과 발을 맞추기 위해서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회창 총재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국회의원 적정 숫자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