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군포시에서 납치·살해된 20대 여학생 A(21)씨는 단란한 서민 가정의 막내딸이었다. 키 160㎝에 몸무게 40㎏ 안팎의 호리호리한 체격에, 갈색 생머리가 어깨쯤에 찰랑거렸다.

A씨의 아버지(53)는 중소기업에 다니다 회사가 부도나서 지난해 7월 실직했다. 어머니(47)가 식당에 다니며 살림을 꾸렸다. 25일 A씨의 시신을 확인한 A씨의 부모와 두 언니, 남동생은 넋 나간 얼굴로 “아니야, 아니야”를 되뇌었다.

A씨는 2007년 2월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안산시의 한 액세서리 가게와 수학 보습학원에서 경리로 일했다. 당시 A씨는 집안이 어려워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다고 A씨의 친구들은 말했다.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대학 다닌다”고 말한 뒤, 대부분의 동창들과 연락을 끊고 몇몇 단짝들하고만 간간이 만나곤 했다.

결국 A씨는 2008년 2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서울 여의도에 있는 평생교육진흥원에 등록했다. 인터넷 강의로 80학점을 이수하면 대학 편입 자격을 주는 과정이었다. 이후 A씨는 군포시 대야미동에 있는 자택과 근처 도서관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A씨는 1년 만에 86학점을 이수했고, 올 봄엔 대학생이 될 꿈에 부풀어 있었다. 실종 당일, A씨는 평생교육진흥원에 들러 대학 편입 상담을 받았다. 서울 시내 중위권 대학인 K대 경영학과가 목표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A씨는 군포 보건소에 들렀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는 큰 언니(25)가 자기 대신 보건증을 찾아오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언니 심부름을 마친 뒤 보건소 앞 버스 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A씨에게 용의자 강모(38)씨가 검정색 에쿠스 승용차를 몰고 접근했다.

2008년 12월 19일 오후 3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강씨의 에쿠스 승용차에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 A씨는 돌이키지 못할 운명을 맞았다. 30분 뒤 A씨의 휴대전화가 꺼졌다. 날이 저물기 전에 A씨는 살해 당했다. 용의자 강씨는 25일 경찰 조사에서 “신용카드를 빼앗은 뒤 스타킹으로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그는 A씨의 벌거벗은 시신을 안산시 본오동의 외진 논두렁에 던지고 A씨의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러 갔다. 그는 현금인출기에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오른쪽 식지에 콘돔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끼운 채 인출기 자판을 눌렀다.

◆희생자, 언제 어떻게 사라졌나

A씨는 지난달 19일 오전 11시 13분쯤 집을 나섰다. 털 달린 모자가 달린 카키색 패딩 점퍼에 검정색 스키니 진을 입고 종아리 높이의 부츠를 신은 차림이었다. A씨가 집에서 나서는 모습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CCTV에 찍혔다. 1시간 뒤, A씨는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에 도착했고, 평생교육진흥원에 가서 대학 편입 상담을 받았다.

A씨는 오후 1시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출발했다. A씨는 지하철 안에서 단짝친구 김모(여·21)씨와 휴대전화 문자를 주고 받았다. 두 사람은 오후 3시쯤 지하철 4호선 산본역 근처에서 만날 계획이었다. A씨가 김씨에게 보낸 문자는 “여의도 갔다 오는 길인데 산본역에서 구두 수선 할 거야”라는 내용이었다.

오후 2시 17분, 산본역에 내린 A씨는 버스 정류장 근처 구두 수선점에 들렀다가 버스를 탔다. 구두수선점 주인은 “인상 착의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설명을 들어보면 이곳에서 구두를 고친 사람이 맞다”고 했다.

◆마지막 4시간

오후 3시 7분쯤 A씨의 모습이 군포보건소 CCTV에 잡혔다. 보건소 직원은 A씨를 기억하지 못했다. 직원은 “A씨와 같은 용무로 보건소에 들리는 사람이 하루 300명이라서...”라고 했다.

A씨의 행적은 여기서 끊긴다. A씨의 집은 보건소에서 800m쯤 떨어진 30평대 아파트다. 집과 보건소를 잇는 길은 인적이 드문 왕복 6차선 도로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대개 A씨는 마을 버스를 타고 다녔다.

경찰 조사에서 용의자 강씨는 검정색 에쿠스 승용차를 몰고 마을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A씨에게 접근해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말을 걸었다고 진술했다. 30분쯤 뒤인 오후 3시37분, 군포보건소에서 4.5㎞쯤 떨어진 안산시 건건동에서 A씨의 휴대전화 신호가 끊겼다. 경찰은 용의자가 휴대전화 배터리를 뽑아서 강제로 끈 것으로 보고 있다.

4시간쯤 뒤인 오후 7시26분쯤, 용의자 강씨가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에 있는 모 금융기관 현금인출기에서 A씨의 신용카드로 현금 70만원을 인출하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통장에 들어있는 예금 전부였다.

강씨는 이어 현금서비스로 돈을 뽑으려 했지만, 비밀번호가 달라서 실패했다. 희생자 A씨의 아버지는 “(딸이) 평소에 씀씀이가 적어, 현금서비스 비밀번호는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마지막까지 희망 버리지 않은 가족들

같은 시간, A씨의 가족들은 A씨가 전화도 없이 늦게 오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밤 11시20분쯤, 어머니가 직접 산본지구대에 딸이 실종됐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연인원 4000여 명을 동원해 A씨를 찾기 시작했다.

시신이 발견되기 전까지, A씨의 가족들은 A씨가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A씨가 진작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경찰은 지난 5일 공개수사에 들어갔다.

당시 A씨의 가족은 “신원을 전부 공개하면 안 된다. 얼굴과 이름을 가려달라”고 경찰에 부탁했다. “신원이 모두 드러나서 ‘대학생’이 아니라 ‘대학 편입 준비생’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친구들 앞에서) 부끄러워서 상처를 받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때까지도 가족은 A씨가 무사히 돌아와서 평범한 일상에 복귀할 것으로 믿고 또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