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히틀러가 패전 뒤에 지하 벙커에서 자살한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영화는 1944년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던 독일군 장교들의 실화다. 다시 말해 '작전명 발키리'라고 이름 붙은 이 암살 시도는 실패한다.

'작전명 발키리'의 주 인공 톰 크루즈. 영화 에서 그는 폭격으로 한쪽 눈과 오른손, 왼 손가락 2개를 잃는다.

반전(反轉)의 여지 없는 악조건의 이 서스펜스 스릴러에서 올 44세인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놀라운 연출력을 보여준다. 그가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보여준 오싹한 반전과는 정반대의 연출이지만 효과는 그 못지 않다. 그는 최근 내한 기자회견에서 "영화 '타이타닉' 역시 모두 그 이야기를 알지만 누가 배와 함께 수장(水葬)되고 누가 살아남는지 모르지 않느냐"며 "게슈타포가 남긴 자료에서 '발키리'에 가담했던 개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긴장의 요소로 썼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지극히 옳다. 관객들은 이 영화의 결말을 알지만, 한치 앞은 결코 모른다. 싱어 감독은 그 작은 틈에서 실낱같은 긴장을 뽑아내 거대한 그물을 짠다. 그 그물 속에 관객을 통째로 넣고 흔든다. 즐거운 현기증이다.

슈타우펜버그 대령(톰 크루즈)은 조국 독일을 사랑하지만 유태인을 학살하는 히틀러를 증오한다. 전투에서 한쪽 눈과 한쪽 손을 잃은 그는 나치 정권 중심부에서 뜻을 같이하는 군인과 정치인들을 모아 히틀러 암살을 모의한다. 암살이 성공하면 베를린을 장악해 2차대전을 끝낼 시나리오까지 만든다. 그는 결국 히틀러의 작전회의실에서 폭약을 터뜨리는 데 성공한다.

히틀러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독일군의 집단 함성과 기관총 소리보다 섬뜩한 타자 소리는 관객의 혈압을 높이는 청각 요소다. 톰 크루즈의 호연은 영화의 긴장에 주름이라도 생기려면 다시 팽팽하게 하는 보톡스다. 그의 외눈은 역사를 다시 쓰기라도 할 것처럼 시종 이글거린다(극 중 왼쪽 눈을 잃은 그는 검은 안대를 끼고 나온다). 빌 나이(올브리히 장군 역)는 거사를 앞두고 흔들리는 군인의 동물적 눈빛을 기막히게 연기했다.

영화에서 쿠데타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이는 슈타우펜버그와 그의 부관뿐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끊임없이 조금씩 흔들리며, 누가 쿠데타 세력이고 아닌지 꾸준히 헷갈린다. 심지어 텔렉스실의 타자수들도 '히틀러 총통께서 서거하셨다'는 전문(電文)을 받을 때 손끝이 흔들린다. 역사는 늘 그렇게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가혹한 질문을 던져왔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

영화에서 전쟁 액션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이것은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속에서 일어난 전쟁을 그린 영화이기 때문이다. '발키리작전'은 총 15차례의 히틀러 암살 시도 중 마지막 시도였다. '발키리'는 독일 작곡가 바그너의 악극 '발퀴레(Die Walk�re)'에서 따왔다. 2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