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예정인 서울 용산 재개발지역 상가건물 옥상을 불법 점거해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 40여 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불이 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지고, 24명이 부상했다. 농성 시작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진압작전에 나선 경찰의 진압 방식이 적절했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20일 오전 5시30분쯤 전경 2개 중대 180여 명을 동원해 재개발 지역 철거민들이 농성 중인 N빌딩을 포위한 뒤 '철수하지 않으면 강제 해산하겠다'는 내용의 경고 방송을 했다. 이어 오전 6시 45분쯤 대형 크레인으로 경찰특공대를 태운 컨테이너를 들어올려 건물 옥상에 투입했다.

철거민들은 발 밑 도로에 있는 전경과 컨테이너에서 내린 특공대를 향해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철거민들이 옥상에 쌓아둔 20L들이 시너통 수십 개에 불이 붙어 폭발음과 함께 삽시간에 옥상이 불길에 휩싸였다. 또 철거민들이 옥상에 4m 높이로 세운 함석 망루가 무너졌고, 불길은 30여 분 만에 잡혔다.

20일 새벽 불길에 휩싸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의 한 4층짜리 건물 옥상. 경찰특공대가 기중기를 이용해 컨테이너 박스를 타고 옥상으로 진입하려 하자, 철거민들이 컨테이너 박스를 흔들어 막고 있다.

이 화재로 경찰특공대 소속 김남훈(31) 경장과 이성수(50)·이상림(70)·양회성(55)씨 등 철거민 5명이 사망했다. 이 중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사망자 2명의 시신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 지문과 DNA 검사 등을 통해 신원을 파악 중이다. 전국철거민연합회는 신원 미상 사망자가 한태성(52)·윤용헌(51)씨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고 당시 어떻게 시너에 불이 붙었는지 정확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앞서 철거민들은 N빌딩을 철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9일 새벽 5시30분쯤 이 건물을 기습 점거했고,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건물내부로 진입하려는 건설사 용역직원과 경찰에 맞서 화염병 수십 개와 돌을 던졌다.

이에 경찰은 19일 오후 7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경찰청장 내정자) 주재로 대책회의를 갖고, 경찰특공대를 보내달라는 백동산 용산경찰서장의 요청에 따라 이튿날 새벽 철거민들을 강제 해산시키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김 청장이 특공대 투입을 최종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날 점거 농성에 참가했다가 연행된 철거민 생존자 28명 중 21명은 용산 철거민이 아니라 농성을 지원하러 온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회원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검찰은 이날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본부를 구성하고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용산 철거민 참사사건에 대해 철저한 진상파악을 지시했다. 한편 민주당은 이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의 파면을 요구했다. 정세균 대표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이 상황은 강경 진압에 의해 온 것으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