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뉴딜 정책이라면 얼핏 후버댐이나 테네시강 개발(TVA)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우리가 미국 관광 때 구경한 물증이 그런 것뿐인 데다, 국내 정치인들이 4대 강 정비 등 토목 공사나 과시적인 투자 사업에 걸핏하면 '뉴딜'이라는 호화 포장지를 덧씌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조(元祖) 뉴딜은 미국이 1등 국가로 가는 과정에서 시도했던 경제 회생의 몸부림이자, 사회 개혁까지 포함한 국가 개조 프로젝트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의 신참내기 경쟁 상대였던 나라가 대공황을 계기로 국가 운영의 틀을 완전히 바꿨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뉴딜에서 환상을 버려야 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이 경제 정책의 성공작이었다는 환상부터가 문제다.

뉴딜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엇갈리고, 당파(黨派)에 따라 다르다. 이념에 따라 다른 성적이 매겨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테네시강 개발의 실패를 정면 공격, 3류 배우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된 계기를 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뉴딜의 실패를 지지세력 결집의 불쏘시개로 삼았던 셈이다.

경제 살리기로서 뉴딜에 대한 미국 경제학계의 학점은 매우 짠 편이다. 그중에서도 돈줄을 풀었다가 돌연 조이는 식으로 통화정책을 엉망진창 운영한 것이 가장 큰 실책이었다는 비판이다.

이런 실패를 심층 연구했던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은 이번에 줄곧 금리를 내리고 돈줄을 풀어왔다. 엇비슷한 생각을 가진 경제학자 크리스티나 로머(Romer)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된 것을 보면 오바마 정권도 루스벨트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각오한 것처럼 보인다.

다만 대형 토목공사로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것, 빈민층에 배식권(푸드 스탬프)을 뿌린 것, 노동권을 넓게 보장한 것 등은 경제 회생 효과보다는 정치적 효과가 더 컸다는 분석이다.

결국 10년이 넘는 경기침체에서 미국을 살려낸 1등 공신은 뉴딜보다는 전쟁(2차 대전)이었다는 게 다수 경제학자들의 평가다. 전쟁 덕에 제조업이 대호황을 누리는 계기를 잡았었다.

원조 뉴딜을 둘러싼 이런저런 평가를 보면, 오늘날 한국에서 토목공사로 재정 지출을 늘리고 예산을 조기 집행하면 경제가 금방 회생할 것처럼 대통령 홀로 뱃머리에서 북 치며 독려하는 모습은 위험한 풍경이다.

뉴딜의 환상을 심어줬다가 만약 경기 사이클이 장기간 올라서지 않으면 국민들의 실망이 얼마나 크겠는가. 성장률 7%, 주가 3000포인트를 화려하게 세일즈했다가 부도 냈던 실패를 반복하지나 않을까 걱정해봐야 한다. 그보다는 더 깊은 불황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방어전략 정도로 설명해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뉴딜에 대한 또 다른 환상은 경제위기 때는 '큰 정부'가 좋은 해법이라는 생각이다. 요사이 관료 세력이 이 논리를 부쩍 강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루스벨트 시절의 미국과 지금의 한국 경제는 딴판으로 다른 상황이다. 당시의 미국은 요즘의 미국과 비교해도 방임(放任)상태나 마찬가지였고, 자유분방한 경제였다. 주가 조작이나 사기를 감시하는 조직도 없었고, 담합·탈세·횡령이 횡행해도 재벌을 처벌할 법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노동자 권리가 법으로 보호받지 못했고, 빈곤 계층은 정부로부터 아무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한 채 굶주리고 있었다. 이 시대 기준에서 보면 거의 무정부 상태라고 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이 때문에 뉴딜 세력은 기업과 개인의 방종, 탐욕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국가 개입과 정부의 파워를 확대하는 선택을 했었다.

반면 오늘날의 한국은 정반대 상황이다.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가 수천 년 지속되어 온 데다, 지난 50년 동안의 경제 성장도 관(官)주도로 이루어졌다.

아직도 가장 막강한 정책 수단은 관료 그룹이 장악하고 있으며, 관료 출신이 민영화된 회사의 사장으로 낙하산 타고 내려가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나라다. 기업인의 의욕을 꺾는 규제는 없애고 없애도 여전히 넘쳐 흐른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심란한 불황을 겪고 있다 해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뉴딜 식 '더 큰 정부'가 아니라, 오히려 '더 작은 정부' 쪽이다. 원조 뉴딜의 간판만 달랑 빌려오지 말고 그 뒤에 담긴 국가 개조의 큰 그림을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