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근무요원에 관한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군 복무를 대신하는 공익근무요원들이 연가(年暇) 조작 등을 통해 근무일을 줄이는 불법행위를 벌이는가 하면 지각, 무단조퇴 등 근무태만은 다반사에 가깝다. 최근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선발된 후 자신이 근무할 기관을 인터넷을 통해 지원하는 제도가 생기면서 ‘신(神)이 부러워하는 자리’를 택하기 위한 편법 과열 경쟁도 빚어지고 있다.

병무청이 작년 10월 제출한 국정감사자료를 보면 공익근무요원의 복무이탈 및 명령위반 사례는 2006년 6750건에서 2007년 5985건으로 다소 줄어들었다. 하지만 ‘불량 공익요원’들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과 불평은 여전하다. 서울의 한 관공서 앞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장모(32)씨는 “점심시간쯤 되면 근무복을 입은 공익근무요원 두세 명이 찾아와 서너 시간씩 게임을 하다가 어슬렁거리며 나가곤 한다”며 “주차관리 공익요원이 슬리퍼를 신고 담배를 피며 활보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 이경국

편법 보직 전쟁
원하는 근무지 당첨 위해 수십 명 동원 동시 접속
인터넷 카페에선 버젓이 ‘근무기관 맞바꾸기’도

병무청은 2005년부터 공익근무요원들의 근무지를 배정할 때 소집 대상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근무기관을 직접 택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무작위 추첨을 통해 근무지를 배정하다 보니 ‘선호하는 근무지를 특정인에게 배정했다’는 특혜 논란이 이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근무기관 인터넷 지원은 병무청 홈페이지에서 1년에 한 번 실시하며, 접수를 받아 선착순으로 마감이 진행된다. 때문에 구(區) 선관위 등 선호 기관은 2~3명 모집에 보통 수백 명이 응모한다. 특히 이 제도는 근무 시작일까지 본인이 택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12~1월, 6~7월 등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를 마친 후 대학에 복학하기 편리한 기간을 선택하려는 응모자들이 폭주한다. 원하는 기관에 원하는 날짜부터 근무를 시작하려면 살인적 눈치작전과 발 빠른 대응이 필수다.

국내 대형 포털사이트 카페에는 ‘공익 복무기관 신청 노하우’ 등이 소개돼 있고 이와 관련된 동영상 강의까지 생겨났다. ‘신이 부러워하는 공익근무기관’을 낚아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러 명이 PC방 등에 모여 인터넷 응모가 시작되자마자 한꺼번에 특정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밀어 넣어 당첨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공익근무요원이 자주 찾는 한 포털사이트에는 “친구 11명과 동시 접속해 결국 원하는 곳에서 복무할 수 있게 됐다”는 글이 떠다니고, 여기에 ‘부럽다’ ‘축하한다’ 등의 댓글과 ‘당첨 노하우를 알려달라’는 요청이 붙는다. 현재 공익근무요원인 김모(26)씨는 “공익근무 기관 지원은 대학의 인기강좌 수강신청 전쟁보다 못해도 10배는 치열할 것”이라며 “‘첫째는 운(運), 둘째는 동시에 클릭해줄 가급적 많은 인원, 셋째는 고(高)사양 컴퓨터가 있는 PC방의 빠른 랜(LAN)이 당락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심지어는 ‘복무기관 교환’도 이뤄진다. 각종 포털사이트의 공익근무 관련 카페에는 ‘○○○(복무기관을 지칭) 삽니다’라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근무 시작 날짜가 같은 소집 대상자끼리 복무기관을 서로 바꾸는 거래를 하는 것이다. 서로 조건이 맞으면 병무청 홈페이지에 거래 당사자들이 동시에 접속한 뒤 이미 당첨된 복무기관 근무 요청을 각자 취소해 결원을 만든 후 바로 상대방의 복무기관 지원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서울 지역의 한 관공서에서 공익근무를 하고 있는 김모(26)씨는 “인터넷 지원에서 탈락하면 무작위로 근무지가 배정되기 때문에 집에서 멀거나 근무 시작 시기가 적당하지 않은 경우가 생긴다”며 “이럴 때 서로 근무지를 바꾸자는 거래 요청을 인터넷에 올리면 조회 수가 엄청날 뿐 아니라 거래를 원하는 사람도 나온다”고 말했다.

연가 조작
 감독관 1명이 100명 관리도… 그나마 주업무는 따로
“하루 이틀 늘려 써도 관심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솔직히 하루나 이틀 정도 몰래 ‘뻥가(‘연가 및 병가를 허위로 쓴다’는 은어)’를 써도 잘 모르죠. 근무지에서 공익요원들을 관리하는 담당자도 주 업무가 따로 있기 때문에 많은 수의 공익요원을 일일이 체크하기가 쉽지 않아요. 물론 출근 일수를 따져서 차비나 식비 등이 책정돼 걸릴 위험도 있지만 하루나 이틀 정도는 잘 모르더라고요.”

서울의 한 공공의료기관에서 공익요원을 한 김모(26)씨는 공익요원에 대한 감시가 강화됐지만 아직 심심찮게 ‘연가 조작’이 일어난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100명에 가까운 공익요원이 근무하는 기관도 공익근무요원의 근태를 책임지는 관리감독관은 한 명밖에 없고 실제 근무 부서의 담당자가 형식적으로 통솔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근무지 담당자에게 허위 연가 결재를 얻어내고 관리 감독관에게는 출근한 것처럼 꾸미면 연가를 부풀려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공익요원이 쓸 수 있는 연가는 최대 35일. 입대일을 기준으로 1년간 15일, 그 뒤 1년간 15일을 쓸 수 있으며 2년이 넘을 경우 5일을 더 쓸 수 있다. 공익근무요원인 김모씨는 “1~2년 전만 해도 정해진 연가를 쓰는 것조차 담당자 눈치가 보여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요새는 ‘공익근무요원의 연가도 당당한 권리’라는 생각이 늘면서 담당자들도 정해진 연가는 쓰라고 권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씨는 관리 담당자가 공익근무요원의 근태에 관심이 없거나 출장이 잦다면 연가 조작은 더 빈번하다고 털어놨다. “담당자들이 관심 없는 곳이면 굳이 ‘뻥가’ 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안 나가도 잘 몰라요. 담당자가 출장 갔을 때는 주변 직원들에게 말로만 ‘연가’라고 하면 그만이죠. 공익보다 일을 더 안 하는 공무원도 수두룩한데 우리한테까지 관심 갖질 않죠.”

한 지하철 공익요원이 노인을 업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병무청은 지난 11월 공익요원의 부정적 이미지 개선을 위해 우수 체험수기를 발간하기도 했다. (좌) 마스코트 '공명이'가 되어 거리 홍보에 나선 선거관리위원회 공익요원들. 공익요원들이 최고로 선호하는 근무처다. (우)

지각 및 복무 이탈
1시간 지각은 기본… 출근 사인 교대로 대신하기도
1년에 7일 근무, 대가 받고 눈감아 준 공무원 구속

연가까지 조작하는 판에 지각과 무단조퇴·결근 사례는 더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통상 관리 담당자들이 출퇴근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근무 관리를 대신하기 때문에 담당자들의 눈을 피하면 지각이나 조퇴가 가능하다. 공익요원끼리 늦게 온 동료의 출근 사인을 대신 해주거나 아예 ‘출근팀’ ‘지각팀’을 나눠 기간을 정해 단체로 지각하는 경우도 있다. 인천에서 공익근무를 하고 있는 정모(24)씨는 “지각, 조퇴는 솔직히 이제 애교로 봐주는 상황처럼 됐다”며 “깐깐한 담당자가 아니면 30분에서 1시간 지각은 기본으로 통한다”고 했다. 경기도 한 관공서의 공익근무요원인 최모(26)씨는 “감독관들도 자기 업무에 신경 쓰다 보니 공익들을 둘러싼 큰 문제나 잡음만 없으면 거의 방치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공익근무요원과 근무지 직원이 무단 이탈을 봐주는 조건으로 대가를 주고받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다. 지난 12월 28일 공익근무요원 김모(29)씨와 김씨가 근무하던 독립기념관의 사무직원 이모(47)씨 등 직원 2명은 공익근무 이탈 및 방조 혐의로 구속됐다. 대전지검 천안지청에 따르면 구속된 독립기념관 직원 이씨 등은 김씨의 근무상황기록부를 조작하다 병무청 불시감사에 적발됐다. 공익요원 김씨는 지난 1년간 실제로는 겨우 7일밖에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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