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중국에서 보물찾기》가 여기 있어. 이거 요즘 인기 짱이야."
6일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마을 주공아파트 도서관. 책 2000권이 들어선 5평짜리 도서관에 아홉 살 순주가 뛰어 들어와 책을 집어 들었다. 차로 30분 걸리는 시립도서관에 가서도 원하던 책을 빌리지 못해 안달하던 참이었다.
2003년 문을 연 이곳은 1050가구 주민들에게는 '가뭄 속 단비'다. 주민들 대부분이 어린 자녀를 둔 30대 부부라 책 빌릴 곳이 절실했지만, 주변에 가까운 공공도서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민의 요구로 만들어진 이곳은 운영도 주민 몫이다. 8명의 주부들이 월~목요일 오후 3시간씩 자리를 지키며 하루에 많게는 100권의 책을 빌려주고 있다. 1000권으로 시작한 책은 4년간 두 배로 늘었다. 자원봉사자 식비로 나오는 월 10만원을 아껴 책을 사 모으고, 주민들이 내놓은 책을 잘 관리한 덕이다. 올해는 '어린이책 전문 도서관'으로 몸집을 불려보자는 목표도 세웠다.
◆아파트 도서관 설치는 건설사의 의무
아파트 단지 내 도서관 설치는 건설사들의 의무다. 주택법 하위 규정인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30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에 도서관법 기준에 맞는 문고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33㎡ 이상 면적의 공간에 6개 이상의 좌석과 1000권 이상의 책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평내마을 도서관처럼 아파트 단지 내 들어선 도서관 수는 전국적으로 210개(2006년 기준)에 불과하다. 아파트 설계 도면상에는 도서관 공간을 넣지만, 입주민들이 요구하지 않으면 건설사들이 쉬쉬하기 때문이다. 주민들도 '아파트 내 도서관'이 건설사의 의무사항인지 잘 모른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아파트. 17층 높이의 이 아파트 12층 72평 공간은 10년째 방치돼있다. 아파트 브랜드 명을 딴 도서관 간판이 걸려있지만, 문은 굳게 잠겨있고 실내도 텅 비어있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주민들이 도서관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데 건설사가 먼저 돈 들여 도서관을 만들겠는가"라고 했다.
경기도 의정부의 한 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광고지에 버젓이 표시된 도서관을 만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건설사를 공정위에 고발까지 했다. 한 주민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민원을 넣었더니 '공간만 제공할 뿐'이라며 버티던 건설사도 2007년 겨우 헌 책 1000권 넣어주더라"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주민 밀도에 비해 공공도서관이 턱없이 부족한 수도권 신도시의 경우 단지 내 도서관이 절실하다"며 "올해 실태 조사를 한 뒤 아파트 도서관 활성화 사업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도서관 운영
문제는 도서관 운영. 도서관을 관리할 인력이 없으면 유지가 불가능하다. 평내마을 도서관도 2007년 12명에 달했던 주민 자원봉사자가 1년 사이 8명으로 줄어 금요일에는 아예 문을 닫는다. 이성례씨는 "경제 사정이 나빠지자 생계 때문에 자원봉사를 그만둔다"며 "주변 도서관에 사서를 파견해달라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했다.
신간을 들여놓을 여유도 없다. 서울 신내 1동 동성아파트 도서관의 경우 중랑구청에서 주는 책으로 겨우 운영해왔지만 작년에는 그마저도 뚝 끊겼다. 부녀회원들은 "구청에 항의했더니 라면박스 한 상자 분량 주고 말더라"며 "이용자들은 많은데 올해는 어디로 책 동냥을 다닐지 막막하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측은 "아파트 단지 내 도서관에 국고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며 "아파트 내 온라인 홈페이지를 만들고 무료로 전자책을 다운받아 보도록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