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8월 완공을 목표로 서울시가 지난 8월 시작한 '서대문 독립공원 재조성 사업'에 대해 현직 문화체육관광부 관료가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한민호 문화체육관광부 디자인공간문화과장은 21일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하자고 서울시에 거듭 제안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졸속 추진하는 바람에 서대문형무소 가치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서울시 계획과 별도로 문화체육관광부가 건축·문화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지난해 서대문형무소 활용방안 연구 용역을 진행했던 것으로 확인돼, 앞으로 독립공원 재조성을 놓고 양측 간에 치열한 논란이 벌어질 전망이다.

문화부 어떤 계획 세웠었나?

문화관광부는 지난해 말 '서대문형무소 활용방안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재단법인 '아름지기'에서 연구를 총괄했고, 건축·디자인 전문가들이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보고서는 "고가도로 건설로 독립문이 1979년 옮겨오면서 조경과 조형이 통합적 구성을 이루지 못하고 무질서한 상태로 유지돼왔으며 서대문형무소(문화재청)와 서대문독립공원(서대문구·서울시)의 관리주체가 분리돼 있어 운영도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의 서대문 독립공원 조성사업에 대해서도 "독립문을 부각하는 데 중점을 두는 등 독립공원과 형무소 사적 지역 사이의 관계가 뚜렷하게 설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역사유적이자 문화공간으로서의 형무소 위상을 높이는 것으로 "건축물 기단이 일부 남아있는 구역은 추가 흔적 발굴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서대문형무소는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유적으로 1908년부터 1987년에 이르는 형무소 역사를 전달하는 장소로 정비해야 한다"며 "독립공원과 형무소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문화부는 ▲남은 형무소 영역과 옥사를 훼손하지 않고 전시관을 새로 지으며 ▲주차장은 지하로 옮기고 그 자리를 광장으로 조성하며 ▲형무소 내부는 지표조사를 통해 흔적을 발굴해 물리적 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기법으로 전시하자는 내용 등을 제안했다.

재단장 방향을 두고 서울시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서대문 독립공원 전경. 서울시는 서대문 형무소가 있는 이곳을 내년 8월까지 재단장할 계획이다.

서울시 "문화부 계획대로 하면 내년에 완공 못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이런 제안은 결과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시가 8월 시작한 '독립공원 재조성사업'은 두 가지 분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사적으로 지정돼 있는 서대문 형무소와 형무소 역사관 지역은 문화재청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서울시의 관리 감독하에 서대문구청이 벽돌과 기왓장 등 낡고 불량한 자재들을 손보고 역사관의 노후한 시설도 정비하고 있다.

형무소를 품은 서대문독립공원 지역은 서울시가 직접 재단장에 나섰다. 2007년 현상공모를 통해 설계작을 선정했다. 낡은 집과 건물이 모여있는 독립문 주변지역 3827㎡를 보상해 철거한 뒤 이 일대를 포함한 1만㎡ 넓이의 광장을 꾸미고, 일본식이라는 지적이 있었던 연못 등 조경도 전통미 있게 바꾸는 것이다. 문화관광부가 제안했던 추가 발굴이나 전시관 신축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문화부가 제안해왔을 때는 이미 서울시가 세운 독립공원 재조성 계획이 상당 부분 진행돼 있었고, 문화부와 함께 진행할 경우 목표로 세운 2009년 8월에 맞춰 도저히 끝낼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부 한민호 과장은 "서대문독립공원 조성작업은 서울의 문화 행정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전은정 전 아름지기 국장도 "서대문형무소 일대를 지방자치단체 관리 공원이 아닌, 국가 문화유산 수준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오랜 기간 준비한 의미 있는 제안인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일부에서도 현재의 독립공원 조성사업이 너무 단편적이고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홍헌일 서대문감옥원형복원연구회장은 "서대문형무소는 항일투사 3만명이 수감되고 400여 명이 순국한 것으로 추정되는 '항일 투사 집합소'인데, 1987년 서울구치소 이전 뒤 광복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폭 철거됐다"며 "후대 역사교육과 문화 가치를 위해서도 공원화 중심의 서울시 작업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