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 월드컵과 2007 세계육상선수권으로 뜨거웠던 일본 오사카 나가이 스타디움이 21일 오렌지색과 자줏빛으로 물들었다. 양 팀으로 갈린 응원단은 흩날리는 가랑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북 소리에 맞춰 천둥 같은 함성을 쏟아냈다. 일본 대학 미식축구의 최고봉을 가리는 '고시엔(甲子園)볼'의 현장.
1947년 첫 대회를 치른 고시엔볼은 매년 고시엔 구장에서 경기를 여는 전통으로 유명했지만 구장이 보수 공사에 들어가며 지난해와 올해는 나가이 스타디움에서 개최됐다. 63회째를 맞이한 올해 고시엔볼에선 간사이(관서·關西) 챔피언 리쓰메이칸(立命館) 대학과 간토(관동·關東) 챔피언 호세이(法政) 대학이 자웅을 겨루었다.
3만3000여 명이 경기장을 찾은 2007 고시엔볼에 이어 올해도 2만명이 넘는 팬들이 고시엔볼을 즐겼다. 일본은 1999년과 2003년 각각 열린 1, 2회 미식축구 월드컵(미국 불참)에서 우승을 차지한 미식축구 강국. 학교와 실업 리그를 통틀어 2만5000여 명이 선수로 뛰고 있으며 대학 리그에 280여 팀이 있을 정도로 넓은 저변을 자랑한다.
특히 고시엔볼은 일본 대학 스포츠를 대표하는 '빅 이벤트'로 꼽힌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간사이 지역과 도쿄가 중심이 되는 간토 지역의 자존심 대결이기 때문. 1949년부터 4년간 관세이학원 대표로 고시엔볼에 참가한 후루가와 아키라 서일본미식축구협회장은 "일본엔 '간토는 럭비, 간사이는 아메훗토(アメフット·일본에서 미식축구를 이르는 말)'란 말이 있다. 간사이 사람들이 미식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토 사람들에 본때를 보여 줄 수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줏빛 군단' 리쓰메이칸이 19대8로 호세이를 물리치며 2008 고시엔볼도 간사이 지역의 승리로 끝났다. 이날 승리로 간사이는 32승4무27패로 역대 전적에서 간토를 앞서게 됐다. 경기 후 양 팀 응원단은 일렬로 늘어선 선수들을 향해 교대로 교가를 불렀다. 승자는 웃었고, 패자는 울었다. 3년째 경기장을 찾는다는 다베야 유키오(54)씨는 "저 장면이 대학 스포츠의 참모습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