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이 그들의 왕을 목 벤지 200여년이 흐른 지금 한 프랑스 남성이 왕가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주인공은 올해 43세의 장 오를레앙 씨. 공식 이름은 ‘장 오를레앙 왕자, 벤돔 공작‘이다. 그는 대를 잇기 위해 곧 결혼한다고 발표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WSJ)이 19일(현지시간) A섹션 1면과 10면에 “오를레앙 왕자가 왕가의 혈통을 잇기 위해 결혼할 것”이라면서 “1789년 피의 혁명이 일어난 프랑스에서 왕정 복고가 이뤄진다면 그의 후손이 왕위를 이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오를레앙 왕자는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언젠가는 왕조가 부활할 것이다. 이대로 앉아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된다”며 왕권 회복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유럽에는 과거 왕족이었던 가문들이 여러 개 있다. 이들은 대부분 그들의 배경에 걸맞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오를레앙 왕자의 야심은 남다르다.
프랑스는 19세기에 4차례에 걸쳐 왕권을 회복한 적이 있지만 이후 공화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알리앙스 로얄이라는 단체는 2004년 유럽연합 선거 때 왕정 복고를 국민투표에 부쳤지만 0.031%의 지지를 얻는데 그쳤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후손으로 정치가인 찰스 나폴레옹은 “200년전으로 돌아가는 왕정 복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설사 왕정복고로 돌아간다 해도 오를레왕 왕자에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왕가의 후예와 누가 적통인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라이벌은 처형된 루이 16세의 가문인 부르봉 왕조다.
오를레앙 왕자는 공식 직위가 없고 일반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생계를 위해 금융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지만 현재는 왕가 부활을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그는 일년에 열 번 정도 프랑스 여러 지역을 여행한다. 시장도 만나고 공장도 방문하며 프랑스의 역사를 알린다. 일년에 한번은 해외 여행도 빠뜨리지 않는다. 바티간 왕국의 관리들과 외국정책을 논의하기도 했고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전통춤을 추기도 했다. 또 기후변화의 문제점을 일깨우기 위해 북극도 방문했다.
지난 달 그는 영국의 ‘웨일스의 왕자(찰스 황태자)’가 60회 생일을 맞았을 때 축하편지를 보냈고 비서로부터 감사의 답신을 받기도 했다.
그는 왕정복고를 꿈꾸지만 권위적인 절대군주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다양하고 소박한 생활을 즐기는 현대적인 왕족이기 때문이다. 낡은 자전거를 타고 파리 시내를 돌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비버리힐스캅 2’이다.
시간이 있을 때는 사냥과 윈드서핑을 즐기고 장식용 칼도 수집한다. 그를 보좌하는 한 명의 스탭이 ‘전하(Your Royal Highness)’라고 부르면 ‘쟝 왕자(Prince Jean)’으로 부르라고 할만큼 격의 없는 스타일이다.
라이벌인 부르봉 왕가는 그의 말이 사기라고 비난했다. 1643년부터 1715년까지 프랑스를 통치한 루이 14세의 직계후손인 부르봉 가문은 오를레앙이 루이 14세의 동생의 후손이며 1830년부터 1848년까지 통치한 루이 필립 1세와 연관된 가문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부르봉 왕의 계승권자는 ‘루이 알퐁스 왕자, 앙주의 공작‘으로 베네수엘라에 거주하고 있다. 그의 자문역인 자크 드 부프레몽-코트니, 부프레몽의 공작’은 알퐁스 왕자가 적법한 왕위 계승권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를레앙 가문이 적통이 아닐뿐더러 프랑스 혁명 당시인 1788년 미국서 싣고온 식량 비축을 도와 결과적으로 이듬해 기근사태로 굶주린 국민들이 혁명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됐다는 것이다.
올해 86세의 부프레몽 공작은 “그들은 범죄자다. 그런 사람들이 집권한다면 재앙이 될 것”이라며 “그들은 매번 우리를 배신했다”고 노여워했다.
이에 대해 오를레앙 왕자는 부르봉 왕족이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페인 혈통이라는 것이다. 그는 외국인은 왕위를 이어 받을 수 없는 옛 관습에 따라 루이스 왕자는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왜 루이스 왕자는 스페인을 통치하지 않는가?”라고 비꼬았다.
두 가문의 관계는 1980년대 후반 오를레앙 왕자의 아버지가 부르봉 가문의 ‘앙주의 공작’ 명칭을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더욱 악화됐다. 이같은 호칭은 왕가에서 붓꽃장식의 휘장과 함께 왕족의 자녀에게 수여하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처음엔 부르봉 가문의 손을 들어주는듯 했으나 공화정 제도아래서 왕족과 관련한 일을 판결해서는 안된다는 판단에 따라 소송을 기각했다.
오를레앙 왕자의 더 큰 고민은 기울어가는 가세다. 본래 그의 가문은 프랑스에서 가장 큰 부자중의 하나였지만 할아버지가 재산을 탕진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한때 리츠호텔을 소유하고 5만명에게 정기적으로 뉴스레터도 보냈던 그의 할아버지는 투자까지 잘못하는 우를 범해 큰 손실을 기록했다.
오를레앙 왕자의 이버지인 ‘앙리, 파리의 백작’도 상당한 재산을 날렸고 최근엔 마리 앙트와네트 왕비의 머리카락 등 왕가의 유품까지 경매처분되는 아픔을 겪었다. 현재 오를레앙 왕자는 프랑스 북부 삼림지대 일부로 국한돼 있다.
2006년 오를레앙 왕자의 사촌 중 한명이 ‘유명인의 굴레에서 탈출’이라는 리얼리티 쇼 프로에 출연해 정글속에서 곤충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오를레랑 왕자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가문의 정통성을 재건하고 프랑스와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왕이 된다면 존재만으로도 프랑스 정부에 도움이 되고 경제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정치 노선은 대단히 신중해서 “나는 좌익도 우익도 아니다. 그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미래의 왕들을 위한 재단도 세우고 싶어하는 그는 내년 5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 반려가 될 여성은 도냐 필로메나 토르노스 스타인하트라는 이름으로 빈 출신이다. 그는 결혼식에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비롯, 유럽의 왕족들을 초대한다는 계획이다.
이후에 할 일은 대를 이을 2세 탄생을 위해 진지한 노력이다. 그는 “내가 할 일은 이상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하지만 씨앗을 뿌린다고 항상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노창현특파원 robi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