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국천·청운대 강사

《전습록(傳習錄)》은 양명학파의 시조 왕양명과 제자들의 대화 내용을 주로 기록한 책이다. 어려운 삶의 여정을 극복하려는 한 인간의 열정이 담겨 있다. 그 열정은 고차원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며 삶을 사랑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책 제목은 습(習)을 전(傳)하는 기록이라고 할 것이다. 흔히, '습'은 습관처럼 부적절하게 몸에 새겨진 일상적 관습을 연상시킬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쉴 새 없이 반복하는 숨쉬기 또한 '습'임을 인지해야 한다. 숨결이 온몸으로 천천히 퍼져갈 때 쉼 없는 생명의 작용을 감지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동안 고동치는 내 심장 박동처럼 '습'은 쉼이 없고 지배적이다.

일상에서 '습'이 아닌 것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내가 싫어하는 것도, 내가 사랑하는 것도, 내가 미워하는 것도 모두 '습'이다. 때로 '습'이 어긋나면 병(病)이 되기도 한다. 내 몸의 병은 외부의 나쁜 기운보다 자신의 잘못된 '습'이 쌓여 생긴 경우가 많다. 이렇게 만들어진 '습'의 병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왕양명은 이러한 인간의 잘못된 '습'을 극복할 깨달음을 전하고자 하였지만 '공부를 출세의 도구로 삼는 일이 골수까지 깊이 젖어 들어 습성을 이룬 지 수천 년'이라며 '습'을 극복하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고 토로하였다.

무자년(戊子年)이 저물어가고 있다. 연초에 담배를 끊기로 했는데, 딸아이와의 그 작은 약속마저 지키지 못했다. '습'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왕양명은 내 마음에 회초리를 친다. "때려도 고통을 모르는 죽은 송장처럼" 살지 마라. "집에 돌아가면 옛날에 하던 일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격물(格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