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
[한·미 FTA]
(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안을 단독 상정한 18일 국회는 해머와 전기톱, 소방호스와 소화기가 난무하며 아수라장이 됐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의 상임위 회의장 진입을 막기 위해 출입문에 책상과 의자로 바리케이드를 쳤고, 민주당은 이를 뚫기 위해 연장을 동원해 기물을 부쉈다. 이 과정에서 여야 당직자, 국회 경위 수십 명이 다쳤고 1987만5000원(국회 사무처 집계)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5~6월 광화문에서 전개됐던 무법 천지가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압축적으로 재현됐다.
◆군사작전 같은 상정 시도
전날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박진 외교통상통일위원장과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은 이날 새벽 2시쯤 회의장에 먼저 들어갔고, 오전 6시30분 한나라당 외통위원 9명이 입장했다. 한나라당은 생리현상 해결을 위한 PET병과 김밥·라면도 준비했다. 민주당 문학진·최규식 의원 등이 회의장 진입을 시도했지만 최 의원만 들어간 상황에서 회의장 문은 굳게 잠겼다. 외통위 민주당 간사인 문 의원은 "이리 오너라. 국회의원의 출입을 막는 놈들이 누구냐"며 항의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회의장 기습 진입과 봉쇄를 '단독 처리를 위한 군사작전'에 비유했다. 이때부터 물리적 충돌이 시작됐다.
◆
해머에 전기톱, 소방호스까지
오전 8시부터 민주당 국회의원 30여명과 당직자 150여명은 회의장 출입문에 서 있던 경위 50여명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며 회의장 진입을 시도했다. 수에서 밀린 국회 경위들은 하나 둘 끌려 나왔고, 경위에게 멱살을 잡힌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어디 국회의원 몸에 손을 대느냐"며 욕설과 함께 경위의 머리를 때렸다.
오전 10시부터 민주당 일부 당직자들이 대형 해머와 정을 이용해 출입문을 뜯어내기 시작했고, 사진 촬영을 막기 위해 비닐 돗자리로 '작업 현장'을 가렸다. 민주당
[신학용]
의원은 "한나라당이 불법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항의해 문을 뜯는 당직자들은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너희들이 이런 짓을 해서 정권을 뺏긴 거야. 정신차려"라고 하자 민주당에선 "군사 독재의 후예들은 입 닥치고 있어"라며 맞섰다. 양측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서로 교환하는 등 격앙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쿵쿵' 소리와 함께 두 시간 넘게 진행된 해머작업 끝에 출입문짝 2개가 뜯겨져 나가자 민주당측에선 환호성이 터졌고 바리케이드용 책상 틈새로 회의장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민주당의 '문짝 철거작업'이 마무리되려는 순간에 나타난
[민노당]
[강기갑]
대표는 뜯어진 문 아래로 몸을 넣어 단독 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강 대표 언제 나타난 거야? 참 빠르시네"라고 했다. 그러나 환호도 잠시. 회의장 안에 있던 국회 경위들은 책상 등을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치며 저항했고, 틈새로 의자를 밀어 민주당측에 던지거나 해머를 낚아채 가져가기도 했다. 회의장에 있던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은 공포에 질려 울기도 했다고 한나라당 관계자가 전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민주당 당직자와 경위들이 서로 던진 가구 파편 등에 맞아 손에 피를 흘렸다. 경위들은 캠코더를 이용해 문을 파괴한 사람들을 촬영했다. 민주당에선 "촛불시위 때 전경과 같은 짓을 한다"며 반발했다. 급기야 전기톱까지 동원되자 국회는 한때 전원을 차단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복도 벽에 있던 소화전을 부수고 소방호스를 꺼내 물을 뿌리며 다시 진입을 시도했고, 회의장 내부의 경위들은 소화기 분말을 뿌리며 맞섰다. 양측에서 "물 대포가 등장했다" "최루탄 아니냐"는 고성이 오갔고, 회의장 밖 대형 유리창이 깨져 한나라당 보좌관이 손을 다쳐 병원에 실려 갔다.
◆여야 서로 "불법행위 중단하라"
[박진]
위원장은 오후 2시3분
[한나라당]
의원 10명만 참석한 가운데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상정했고, 이들은 곧바로 회의장 밖으로 나왔다. 민주당 당직자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향해 "쥐××들아, 기분 좋냐"며 야유를 퍼부었고, 한나라당 보좌관들은 "수고하셨습니다"라며 박수를 쳤다. 야당 중 유일하게 회의장에 있었던 민주당
[최규식]
의원은 "한나라당이 나를 골방에 감금했다"고 했다.
아수라장이 된 회의장에 들어간 민노당
[이정희]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명패를 던져 부쉈고, 민주당
[최영희]
의원도 명패를 발로 밟아 부쉈다. 문이 잠겨 회의장에 못 들어간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외통위원들이 참여하지 않은 채 상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박진 위원장은 성명을 내고 "국회에서의 불법 폭력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했고,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불법 상정은 원천 무효"라고 했다.
여야의 한바탕 전투가 끝난 뒤 환경미화원들이 바닥에 흩어진 물과 깨진 유리, 가구 파편들을 청소했다. 한 미화원은 "이걸 언제 다 치우느냐"며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