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예순일곱 할아버지의 눈에 비친 다섯 살 꼬마 아이의 사랑 이야기 '벼랑 위의 포뇨'는 어느덧 관객을 어릴 적 그때로 돌아가게 한다. 작화 감독인 곤도 가쓰야의 세 살짜리 손녀딸의 모습에서 따 왔다는 '포뇨'는 일본에서 '이웃집 토토로' 이후 하야오가 만들어낸 최고의 아동용 캐릭터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관객 1200만 명을 이미 돌파했고, 아직도 상영 중이다. 커다란 눈에 몸체를 살랑대며 물 속을 유영하는 금붕어 포뇨의 모습은 마치 솜사탕을 맛보듯 달콤하기만 하다.
바닷속 생활이 따분해진 물고기 포뇨는 세상 위로 나왔다 벼랑 위에 사는 다섯 살 소년 소스케에게 발견된다. 인간이었던 포뇨의 아버지 후지모토는 자연을 해치는 인간에게 넌더리를 느끼고 바다의 신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후지모토는 포뇨가 '인간'이라는 '때'가 탈까봐 다시 바다로 데려오지만 소스케를 좋아하게 된 포뇨는 탈출을 감행한다. 여신 그랑망마레의 파워를 물려받은 포뇨에겐 어느덧 손과 발이 생겨나고, 소스케와 함께 우정을 쌓아간다. 포뇨의 모티브는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따온 듯하다. 물고기에서 사람이 된 포뇨가 소스케의 사랑을 얻으면 영원히 사람이 되지만 그렇지 못했을 경우 물거품으로 변한다는 구성이 그렇다. 하야오는 '비극' 대신 웃음이 절로 나오는 희극을 택했다.
3D애니메이션이 쏟아져 나오는 이 시점에 2D만으로도 색채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그의 작법이 놀랍기만 하다. 모든 작화를 일일이 손으로 그려낸, 그것도 연필로 완성한 17만장의 그림이 갖는 섬세함이 만들어낸 공(功)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11만 장이었다. 마을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파도의 너울거림이나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수백 개의 파스텔톤 '아기 포뇨'들의 향연은 은은한 유색 보석 쇼를 보는 듯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보다는 '이웃집 토토로'의 감성에 가깝다. 그만큼 좀 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췄다. '하울…'이나 '붉은 돼지' 등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사랑했던 열성 팬이라면 이번 작품에 '밋밋하다'는 평을 내놓을 수도 있다. 기괴한 얼굴의 캐릭터가 등장하거나 인간 세계에 대한 실망과 단절, 환경에의 역습 등 좀 더 극적인 스토리를 심어줬던 전작에 비해 노장의 손끝이 상당히 부드러워진 걸 느낄 수 있다. 순수성은 더욱 강해졌다. 지난 8월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던 작품. 1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