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꽃가마에 오르세요."
4년 만에 부활한 천하장사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윤정수(23·수원시청)는 아버지 윤왕규(47)씨를 태운 꽃가마를 직접 어깨에 메었다. 선수나 감독 외에 다른 사람이 꽃가마에 탄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사코 사양하던 아버지 윤씨는 가마에 올라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들은 "15년간 뒷바라지를 해주신 아버지께 아들이 처음 드리는 조그만 선물"이라고 했다.
윤정수는 13일 경남 남해체육관에서 열린 천하장사씨름대회(주최 대한씨름협회 민속씨름위원회)에서 유승록(27·용인백옥쌀)에게 3대2 역전승을 거두고 '황소 트로피'와 상금 5000만원을 품에 안았다. 키 1m90, 체중 170㎏의 우람한 몸집인 윤정수는 "마지막 다섯째 판을 앞두고 아버지께서 '집중해야 이긴다'고 외치시는 게 들렸다"고 말했다.
윤정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씨름을 시작했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던 윤정수는 힘에선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지만, 체중이 20㎏이나 적은 씨름부 선배에게 번번이 지면서 씨름의 묘미를 느끼게 됐다.
선수 생활은 쉽지 않았다. 고교시절 140㎏이 넘던 윤정수는 체중 제한(120㎏)에 걸려 학생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 실업 선수들과 경기하면 매번 당하기 일쑤. 씨름판의 몰락은 윤정수에게 진로 걱정까지 하게 만들었다. 대학 입학 직후 입은 종아리 부상이 1년6개월간 낫지 않을 땐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윤정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항생제 때문에 서 있기도 힘들 만큼 어지러웠을 때도 샅바를 풀지 않았다. 대회 중 경기장 의무실에서 종아리를 찢고 염증을 뺀 뒤 다시 모래판에 서기도 했다.
힘들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은 '알뜰 시장'이 열리는 전국 각지의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생선 장사를 했다. 윤정수가 부상 당했을 땐 한 번에 30만~40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 일쑤였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아들이 걱정할까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윤정수는 "운동하면서 집에 가본 적이 거의 없어 죄송했는데, 상금으로 부모님 모시고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천하장사 윤정수는 내년 1월 설날장사씨름대회 정상을 다시 노린다. 설날대회엔 1994년·2000년·2002년 3차례 천하장사에 오른 뒤 이종 격투기 선수로 활동했던 이태현(32·구미시청)의 복귀가 예정돼 있다. 윤정수는 "존경하던 이태현 선배를 꼭 이겨보고 싶다"며 "최강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