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대교 남단에서 남부순환로 방향으로 뻗은 언주로를 달리다 보면 도로 양편에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10여m 높이로 쭉쭉 뻗어 있다. 이 플라타너스는 언주로 중간쯤인 관세청 사거리에 이르면 갑자기 뚝 끊긴다. 강남구청은 그 지점부터 경복아파트사거리까지 800m 구간에 있던 플라타너스를 다 뽑아내고 대신 은행나무를 심었다. 플라타너스를 뽑아낸 자리에는 벌건 흙더미가 쌓여 있고, 직경이 30~40㎝가 넘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대신 직경 10여㎝의 가느다란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30년째 살고 있다는 남모(75)씨는 "이곳 플라타너스는 최소 30년 이상 된 것들"이라며 "여름이면 그늘이 얼마나 시원했는데, 멀쩡한 나무를 뽑아서 왜 내버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의 플라타너스들이 이곳저곳에서 뽑혀 나가는 수난을 겪고 있다. 플라타너스는 은행나무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 많은 가로수 수종이다. 각 구청들은 이런 플라타너스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다른 나무를 심는 '가로수 수종 교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남구청은 8월부터 내년 7월까지 언주로 5.2㎞ 구간에 12억원의 예산을 들여 플라타너스 792그루를 뽑아내고 은행나무 626그루를 심을 예정이다. 학동로 3.2㎞ 구간에도 4억원을 들여서 플라타너스를 없애고 느티나무를 심고 있다. 중구청도 2006년부터 30억원의 예산을 들여 가로수를 소나무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 중이고, 송파구와 성동구 등도 플라타너스를 없애고 벚나무와 느티나무, 목백합 등을 가로수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구청들이 가로수에서 플라타너스를 퇴출시키려는 것은 플라타너스가 너무 크게 자라서 도심 건물을 가리고, 봄철에는 꽃가루가 심하게 날린다는 이유다.
강남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1970~1980년대 한창 도시 녹화사업을 할 때는 빨리 자라나는 플라타너스가 각광을 받았다"며 "하지만 벌레가 너무 많이 꼬여 1년에 8번이나 방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로변 상인들은 대체로 플라타너스 퇴출을 반기는 편이다. 중구 상인 민을식(여·55)씨는 "7년째 봄마다 플라타너스 꽃가루에 시달렸는데 소나무로 바꾸길 정말 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로수로서 완벽한 나무란 없는데 오랫동안 자란 나무를 뽑아내고 수종을 바꾸는 데만 수십억원씩 쓰는 것은 '낭비'라는 비판도 있다. 플라타너스에서 꽃가루가 날린다면 은행나무 암나무는 열매를 맺을 때 냄새가 심한 단점이 있고, 소나무는 공해에 약한 데다 상록수라서 항상 그늘이 지기 때문에 겨울에 인도의 눈이 잘 녹지 않는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조경수 연구원인 박형순 박사는 "외국 대도시에는 플라타너스를 잘 관리해서 멋진 경관을 꾸며둔 곳이 많다"면서 "나무가 수십년을 자라려면 공이 많이 드는데 조금 단점이 있다고 해서 참지 못하고 뽑아내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각 구청은 뽑아낸 플라타너스를 t당 4만~6만원쯤 주고 폐기물처리업체를 통해 '폐기물'로 처리하고 있다. 폐기물 업체들은 수거한 플라타너스를 소각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분쇄한 뒤 톱밥으로 재활용한다. 30년 이상 서울 도로변을 지켜온 플라타너스들은 죽은 뒤에도 화물선 바닥 완충재나 동물의 분변과 섞여 '친환경 비료'로 쓰임을 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