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보다 두주 늦게 박솔미와 마주했다. 드라마 '내 여자'(MBC) 직후 만나기로 한 약속이 그녀의 갑작스런 장염으로 한참이나 늦춰졌다. 한 작품을 끝내면 항상 죽었다 살아나는 열병을 앓곤 한다는 그녀. "그렇게 깨어났다 눈 한번 감았다 뜨면 훌쩍 한 해가 흘러가 있기 일쑤더라"며 서두를 연다. 일할 땐 모든 걸 던져 올인하지만 쉴 때는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산다는 뜻일까. 일 그리고 일상 얘기가 실타래처럼 풀려나온다.

설왕설래 '내 여자'… 
박정철과 강도높은 목욕신-베드신…
스캔들 안나는것 보면 인연 아닌가봐 
  
24부작짜리 긴 호흡의 안방 드라마를 얼마전 끝마쳤다. 박정철과의 파격 목욕탕 신을 비롯, 매회 강도 높은 스킨십을 보여줘 시청자들의 설왕설래를 자아냈다. "30부짜리 '황금사과'를 했었지만 중간에 올림픽 때문에 건너뛰어서 그런 지 이번 작품을 더 오래 찍은 것 같아요. 사계절을 다 거쳤으니깐요. 거제 사천 통영 서해안 등 대한민국의 바닷가는 다 다녀봤어요."

최여진과 친한 선후배 사이가 됐다는 건 이번 작품으로 얻게된 보너스.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데뷔한 최여진을 처음 본 순간 "쌍꺼풀 없는 시원시원한 그녀의 느낌이 너무 좋아 일반 팬처럼 그녀의 동정을 체크해왔었다"며 "반년 넘게 작품을 함께 하면서 함께 밥 먹고 술 먹고 너무 친해졌고 선배로서 이런저런 조언도 많이 해주고 있다"고 말한다. 또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는 연예인 후배는 송혜교. "속 얘기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죠. '내여자' 할 때 (송)혜교가 내 작품을 모니터해줬고 지금은 내가 '그들이 사는 세상'을 모니터해주고 있어요." 박정철과도 참 많이 친해졌다. 키스신에 베드신을 함께 하며 쌓은 우정(?)이다. "저희끼리 농담해요. 이렇게 맨날 껴안고 물고 빨고 하는데도 정분이 안나는 걸 보면 우리는 정말 인연이 아닌가봐 하고. 사심이 생길 법도 한데 참 안생기더라구요. 작가님이 저희 캐릭터를 너무 사랑하셨던 것 같기는 하죠?"(웃음)

출세작 '겨울연가'…
감독 수차례 찾아가 행운의 배역 따내
지금도 '불로소득' 통장에 꼬박꼬박…

'겨울연가'로 혜성같이 등장, '올인'으로 인기를 다졌다. '바람의 전설'과 '황금사과' 등을 거쳐 '내 여자'로 이어졌지만 총 작품 수가 10편도 안된다. 1년에 평균 한 작품만 할 수 있었던 배경은 탄탄한 경제력. '겨울연가' 덕분에 들어오는 '불로소득'이 적지 않을 듯 해 까놓고 물어봤다.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꽤 되는 건 사실이에요. '빠찡꼬' 화면에 제 얼굴이 나오는 것도 수입으로 이어지더라구요. 드라마 한 작품 하는 것 보다 나을 때도 있어요. 입금된 액수를 보고 한류가 뜨겁다거나 좀 주춤한다거나 하는 지표를 가늠하죠."

'겨울연가'는 데뷔작이자 출세작이자 대표작. 풋풋한 신인 시절 뜨거운 열정으로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그동안에 출연한 모든 작품을 통틀어서도 주저없이 가장 사랑했던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다. "제가 MBC 공채 탤런트 출신인데 2년간 변변한 연기를 할 기회가 없었어요. 안되겠다 싶어 계약기간 만료가 되자마자 SBS 드라마국을 혈혈단신으로 찾아가 연기하고 싶다고 울어댔죠. 운좋게 '남과여'라는 단막극을 4회 연속으로 하게 됐어요."

그러 던 차에 '겨울연가'를 한다는 얘기를 접하고 무작정 윤석호 감독님을 수차례 찾아갔다. 번번이 거절당했고 매니저가 없어서 안되나 싶어 아는 매니저를 내 매니저인양 데리고 가서 만나기도 했단다. "실은 캐스팅된 여배우가 따로 있었대요. 그런데 저 때문에 윤 감독이 마음을 움직이신 거죠. 지금은 잘 나가는 톱스타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긴 해요."

가장 감동적인 건 윤 감독이 자신의 연기를 좋게 평가해 당초 예정보다 생명을 연장시켜줬다는 것. "NHK의 토크쇼에 윤감독님과 함께 출연한 적이 있는데, 감독님이 '원래 제 역할이 8부에서 없어지는 거였는데 너무나 귀여운 악녀 캐릭터가 만들어져 끝까지 가도록 해달라고 오수연 작가님께 강력하게 주장했다'는 얘기를 해주시더라구요. 그 자리에서 울었잖아요."

평범과 4차원 사이…
편한 차림에 게임 취미…소주2병 거뜬

천상 여자인 화려한 외모와 시원시원한 몸매. 언뜻 화려한 여배우의 삶을 살 것 같은데 들여다보면 다분히 평범하기에 꽤나 4차원적이다 싶은 구석이 많다. 옷차림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재킷에 청바지. "페미닌한 의상을 챙겨입기 보다는 트레이닝복이나 청바지 등 편한 옷을 즐겨 입는다"며 "일상 그대로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취미는 게임. 집안에 온갖 첨단 게임기들을 유형별로 갖춰놓고 지낸다. 그렇다고 중성적인 캐릭터도 아니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어 찜, 전골 등 웬만한 요리는 다 해먹는다. 심지어 청국장도 집에서 띄워먹고 오이소박이 정도는 담궈먹는다. 왼손잡이라 이 모든 일을 주로 왼손을 사용해서 한다.

의리를 중시하는 스타일.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인연을 맺은 김한민 감독의 러브콜에 영화 '핸드폰'에 우정출연하기로 했다. 4박5일만 촬영하면 된다는 말에 시나리오도 안 보고 오케이했는데 요즘 크게 후회하고 있다며 너스레. "'내여자'에서 질릴만큼 울었거든요. 18시간씩 우는 연기하고 나면 우울해져요. 당분간 우는 작품은 하지 말자 생각했는데, 세상에. '핸드폰' 촬영장 갔더니 감독님이 카메라가 돌면 울기만 하면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우는 연기만 며칠째 하고 있어요." 주량도 만만치 않다. 잘 나갈 때는 소주 5병도 마셨고 요즘엔 2병 정도까지 한단다. 남자건 여자건 술 친구들을 집까지 바래다주는 게 그녀의 남다른 술버릇이라고. "술 광고 들어오면 생으로 할 수 있다"며 큰소리다. 알고보면 털털하고 정말 괜찮다는 업계나 기자들 사이에서의 평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 하다.

30대의 소망…
그동안 날 사랑…후회없이 사랑하고파

2006년 이후 지금까지 3년 가까이 솔로다. 이별의 후유증이 길었던 때문일까. "누군가를 사랑한 만큼 내가 나를 사랑한 적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나 자신을 더 사랑한 시간이었죠."

이제는 다시 사랑할 준비가 돼 있는데 아직 임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사랑할 때는 후회없이 해보고 싶어요. 길거리에서 남자친구 손을 잡고 다녀본 적이 없어요. 밥집에서 나란히 앉아 밥 먹은 적도 없구요. 남들처럼 남의 시선 신경 안쓰고 자유롭게 연애 한번 해보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여성스러운 외모에 대한 선입견 탓인 지 이상하게도 여성적인 캐릭터만 몰린다는 게 그녀의 불만. "'야 이런 시벵아!'하는 막말도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는 확 깨는 연기도 할 수 있는데. 사극이나 일일극 등 기존에 못해본 장르도 좋구요." 흰 눈의 계절 겨울. '겨울연가'의 추억을 떠올리며 조만간 케이블 프로그램 촬영차 '오겡키데스카'의 섬 홋카이도로 무전 배낭여행을 떠난다. "20대는 세상이 컬러풀했는데, 30대가 되니 회색빛 같기도 해요. 비관주의자는 아닌데…. 무향무취도 좋은 거잖아요. 새하얀 눈처럼.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으면서…. 눈에 띄지 않게 잘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