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에 대한 조선 유학자들의 논쟁은 수백 년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그 논지들의 차이는 일란성 쌍둥이 얼굴들처럼 미묘하고 사소하다. 그래서 이 말이 저 말 같고, 저 말이 이 말 같다. 철학이란 게 새로운 삶을 탐사하기 위해 시작하는 것이지만, 하다 보면 결국 제자리를 맴돌곤 했다. 철학논쟁이 까다롭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 터다. 하지만 무지를 무릅쓰고 용감하게 덤비다 보면 유교 철학논쟁의 핵심도 의외로 단순 명쾌하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이(理)와 기(氣), 그리고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의 관계가 거의 모든 철학 논쟁의 범주였던 것이다.
사실 우주와 사물, 즉 자연학적 해석에 따른 이기(理氣)론에 대해 이의를 다는 유학자는 거의 없었다. 서양 중세시대 성직자가 신을 부정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이기론이 인간의 본성, 즉 사단칠정 개념과 결합한 인간학적 관점에서는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치열하게 논쟁했다. 일찍이 이황과 기대승이 벌인 사단칠정 논쟁과 그 후속 격인 '인심도심(人心道心) 논쟁'이 그랬다.
그러면 인심과 도심은 무엇이며, 그 논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서경'에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미미하니 정성을 다하고 한 가지에 집중해야 진실로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고대 중국의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했다는 말이다. 이 말에 대해 주희는 "인심은 사람의 신체적 기운에서 생기고, 도심은 선천적인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도심은 인간의 본성에 따른 선한 것이고, 인심은 육체적 기운과 욕망에 따라서 선할 때도 있고 악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이기이원론적 관점이었다. 이에 대해 명나라 유학자 나흠순(1465~1547)은 "이는 실체가 아니라 다만 기가 움직이는 법칙일 뿐"이라며 일원론적 관점에서 비판했다.
조선에서는 남명 조식이 주리론자 이언적의 해석에 트집을 잡으면서 인심도심 논쟁이 시작됐다. 주기론자 조식은 "이언적이 귀, 눈, 입, 코에서 생기는 욕망을 사욕이라고 말한 것은 잘못이다. 그런 욕망이 생기는 것은 보통 사람이나 성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한편, 이황은 "인심은 칠정이 되고, 도심은 사단이 된다"며 주희의 학설을 답습했다. 다만 인심을 인욕(人慾)과 구별하면서 악보다는 선의 측면을 강조했다. 그러자 소재 노수신(1515~1590)이 나흠순의 견해를 계승해 인심도심논쟁에 뛰어들었다. 거기에 다시 이황과 이항, 김인후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인심도심논쟁이 활발하게 펼쳐지게 된다.
그런데 조선에서 인심도심에 대해 가장 체계적인 논쟁을 오랫동안 벌인 사람은 바로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成渾, 1535-1598)이었다. 이이와 성혼은 서로 아홉 차례나 편지를 주고받으며 논쟁을 이어갔다. 그 또한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을 닮았다. 하지만 이황과 기대승이 논쟁과정에서 점점 합의에 다가간 반면, 이이와 성혼은 끝까지 평행선을 유지했다.
먼저 성혼은 이황의 논지를 빌어 도심을 사단에 인심을 칠정에 대입했다. 그런데 사단은 하늘의 이치가 드러난 단서일 뿐이지만, 도심은 마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므로 사단과 도심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라고 봤다. 또 "이와 기의 발동이 처음에는 선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기가 절도에 맞지 않게 된 뒤에야 마침내 악으로 흐르는 것일 따름"이라고 이황의 학설을 해석하며, "인심도심설이 그처럼 구분돼 있고 이와 기가 각각 발동하는 것을 예부터 성현이 모두 근본으로 삼았으니 이황의 논의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고 했다. 역시 이기이원론이다.
이에 대해 이이는 "성현의 말씀도 횡설수설할 때가 있다"며 이황의 견해를 뭉개버린 뒤에, 인심과 도심이 서로 작용을 하는 관계여서 인심도 잘 다스리면 도심이 되고, 도심도 풀어지면 인심이 될 수 있다는 변증법적 논리를 펼쳤다. 결국은 선과 악이 각각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될 수도 있다는 일원론이었다. 또 이이는 "칠정은 인심도심의 선악을 합해 말한 것이고, 사단은 도심과 인심 가운데 선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며, 사단은 칠정을 포함할 수 없으나, 칠정은 사단을 포함할 수 있어서 서로 대치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사단칠정론이든, 인심도심론이든 모두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 악이 불변의 형태로 따로 존재하지 않아 인간의 심성을 교화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므로 누구나 다 요순(堯舜)같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임금들을 향해 왕도정치를 촉구한 것이었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이이 또한 성인이 되는 것이 평생의 목적이라고 했다. 성악설을 주장했다는 순자마저도 인간의 선한 심성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순자는 인간 본성의 다면성에 주목했다. 또 다른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