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취업 시장의 문이 닫히고 있다. 올해 3/4분기 청년층 취업 준비생은 45만8000명, 직장 구하기를 포기한 청년은 3만6000명에 이르렀다. 2003년 이후 최악이다. 이 암울한 벽(壁) 앞에서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들 중 40명을 인터뷰해 육성(肉聲)을 일부 옮긴다.

―실무 경력 1년, 어학연수 1년, 토익 900점…. 여기에 또 뭘 추가해야 직장을 구할 수 있나요. 아무리 취업난이라지만 말단 신입사원 하나 뽑으면서 뭘 그리 많이 바라는지 모르겠어요. 얼마나 대단해야 월급쟁이가 될 수 있는 거죠?(디자인 업체 취업 준비생 김모씨·여·25)

―기업들이 신입사원 모집 때 그러잖아요. 열정과 패기만 있으면 된다고…. 그것 다 거짓말이에요. 증권사 면접 보러 갔더니 면접관이 '왜 당신만 자격증이 없느냐'고 물어 보는데 할 말이 없더군요. 미련하게 열정과 패기만 가지고 면접 갔다가는 무조건 낙방입니다.(연세대 경영학과 졸업생 박모씨·26)

―1학년 때 선배들이 대학은 취업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우리 학교 우리 과(科) 정도면 적당한 학점에, 토익 점수만 잘 받아놓으면 취업은 별문제 없을 거다. 여행 많이 다니면서 경험을 쌓고, 시야를 넓혀야 한다' 했지요. 그때 그 선배들 말 믿고 따랐던 친구들, 지금 백수예요.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4학년 김모씨·27)

―학점, 토익, 봉사활동, 인턴 경험까지 다른 사람에 뒤지지 않게 준비했는데도 매번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시험 삼아 한번은 은행 입사원서에 출신 대학만 '서울대 경영학과'로 고치고 내봤어요. 그랬더니 한 번도 통과하지 못했던 은행 서류전형에 턱~ 하니 통과되더군요.(서울 중위권대학 국제통상학과·이모씨·24)

19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대학교 취업 게시판 앞을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11월 들어 기업들의 신규 채용이 대부분 마감돼 채용 공고 게시판이 썰렁하다.

―취업은 못했는데, 내년 2월 졸업해야 돼요. 이번에 취업 안 되면 일부러 F학점 한두 개 받아서라도 졸업을 연기할 생각이에요. 여자 나이 27세에 학교도 다니지 않고 백수로 산다는 게 너무 끔찍할 것 같아서요.(서울 상위권대 4학년생·백모씨·26)

―처음 서류전형에서 한두 번 떨어질 때는 '어~ 왜 이러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 번쯤 떨어지니까 온몸에서 힘이 빠져요. '정말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싶었지요. 30번 정도 떨어지니까 '내가 그렇지 뭐' 하는 생각이 들어요. 떨어지는 것도 만성이 돼 가요.(경희대 국제경영학과 4학년 박모씨·26)

―은행, 증권사 포기하고 눈높이 낮춰서 작은 저축은행에 지원했습니다. 면접 시험장에 12명이 들어갔는데, 웬걸요. 학벌, 자격증, 학점에서 내가 제일 '바닥'이에요. 은행이나 증권사 가야 할 녀석들이 저축은행까지 내려 와서 제가 들어갈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겁니다.(고려대 문과계열 학과 졸업생 박모씨·29)

―나름대로 명문대 나와서, 중국 어학 연수도 다녀오고, 대기업 주최 공모전에서 1등을 했어요. 경제학 복수 전공하느라 대학은 11학기째 다니고 있어요. 어떻게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려요. 아무리 내가 능력이 없어도 '본전' 생각날 수밖에 없어요.(서울 상위권 사립대 국문과 4학년·박모씨·29)

―정부 정책은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밀어 주는 방향으로 가면서, 왜 우리 보고는 눈높이 낮춰서 중소기업 가라고 하는 거죠. 중소기업은 그다지 지원해주지도 않으면서…. 또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무원, 교수, 대기업 CEO 출신이잖아요. 우리도 그런 직장 가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요?(건국대 경영대 졸업생·김모씨·28)

―경기 좋던 시절에 상고 졸업하고 비정규직으로 들어 온 아줌마들은 다 정규직 됐지만, 우리에게는 정규직이 될 기회조차 없어요. 기성 세대들은 좋은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젊은 사람들에게는 눈높이를 낮추고 살라는 것이 말이 되나요? (대학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구직활동 중인 김모씨·여·27)

―컴퓨터를 제법 잘 다뤄 사무직 일을 시킨다면 잘할 자신이 있지만, 어차피 나 같은 고졸자에겐 꿈 같은 얘기에요. 가끔 채용 공고를 보고 거기서 일하는 상상을 하다가도 '대졸' 또는 '2년제 대학 졸'이라는 지원 자격을 보는 순간 현실로 돌아옵니다.(6개월에 한 번씩 직장을 옮겨 다니는 고졸 구직자 이모씨·25)

―정부가 청년실업 대책이라고 내놓은 게 있기는 한가요.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어요. 정부에서 하는 일이 우리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라서 그런 것 아닌가요.(고려대 문과대 4학년·양모씨·28)

―어학연수, 자격증, 토익 이런 것 다 돈 없으면 하기 힘들어요. 있는 집 애들은 수천만 원씩 들여 취업 준비해서 좋은 직장 들어가고, 집이 가난하면 취업 준비도 제대로 못하는 거죠. 이젠 취업도 양극화된 겁니다.(성균관대 신방과 4학년·은모씨·25)

―매번 서류전형에서 떨어지다가 지난달에 의류 업체에 지원해 최종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졌어요. 부산에 계신 어머니가 이 소식을 듣고는 서울까지 한달음에 올라 오셔서 '괜찮다'며 저녁을 사주고 내려가셨어요. 죄송한 마음에 밥이 목구멍에서 넘어 가질 않았어요.(서울여대 의상학과 4학년 윤모씨·24)

―요즘은 부모님 얼굴 보는 일이 제일 힘들어요. 부모님과 마주치지 않게 아침 일찍 나가고, 밤 늦게 들어 와요. 꼭 입사하고 싶었던 대한항공 서류전형에서 떨어졌을 때는 부모님 몰래 밤 늦게 집에 들어 와서 이불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어요.(서울 소재 대학 영문과 졸업·강모씨·여·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