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지법 민사7단독 임혜원 판사는 지난 3일 "정관수술을 했는데도 임신했다"며 A(40)씨 부부가 해당 비뇨기과 병원을 상대로 낸 3000만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아들 딸을 두고 있는 대기업 사원 B(41)씨는 해외지사 근무 발령을 받은 뒤 정관수술을 했다. 그런데 석 달 만에 부인이 임신을 하면서 오해와 갈등이 심해졌다. B씨는 "아이가 친자로 확인된 뒤 부부관계가 원만해졌지만 아내를 의심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21개월, 6개월 된 아이를 둔 사람입니다. 4월에 정관수술을 하고 7월부터 관계를 가졌는데 처가 임신을 했다고 하네요. 소송까지는 복잡할 것이고 이런 일을 담당하는 관청은 없나요?"

"신랑이 정관수술 한 지 5~6년 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임신반응이 나왔습니다. 제가 바람 피운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요? 놀랍고 황당합니다."

인터넷 포털과 비뇨기과 게시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질문들이다. 비뇨기과 의사들은 정관수술 후 임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임신 가능성이 있다"고 답을 한다. 정관수술이 성공적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난 뒤 인체 복원력에 의해 정관이 복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주지법도 이번 판결을 내며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에도 10회 사정(射精) 후 한 달 간격으로 두 차례 정액 검사를 해 무정자증임을 확인해야 한다"며 "병원측이 이를 고지했기 때문에 의료상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유사한 판결은 2004년 9월 서울 중앙지법에서도 있었다. 이 30대 부부는 2년 전 남편이 두 차례 정관수술을 했지만 부인이 임신하자 병원을 상대로 1200만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에도 법원은 '정관수술 뒤에도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정액이 배출돼 임신 가능성이 있다'며 '병원측이 수술하며 의료상 주의 의무를 어겼다고 보기 힘들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정관수술은 국소 마취 후 간단히 할 수 있는 수술로 남성의 대표적인 피임법이다. 최근에는 '무도(無刀) 정관수술'이라고 해 칼을 대지 않고 고환주머니(음낭)에 작은 구멍을 내 정관을 밖으로 꺼내 양끝을 실로 묶고 그 사이를 자른 뒤 다시 원위치하는 방법으로 수술을 한다.

고환에서 만들어진 정자는 부고환에서 성숙돼 저장돼있다가 정관을 통하여 정낭과 전립선에서 분비된 정액과 함께 사정관을 통해 요도로 방출되는데 이 중 정자의 통로인 정관만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통증 없이 15~20분 정도면 가능하고 1주일 후 부부관계도 가능하지만 복원도 가능한 수술법이다.

의사들은 정작 수술 뒤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두 달간 부부관계시 콘돔을 사용해 남은 잔여 정자를 배출하든지 최소 10번 이상의 사정을 한 상태에서 한 달이나 두 달 간격으로 두 차례 정액 검사를 해 정액에 정자가 없다는 '무정자증'임을 확인해야 비로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정관수술 후에도 인체 재생력에 의해 정관이 연결되는 경우가 1~5% 정도이고 무정자증이 검사되고도 부부관계를 하면서 정관이 복원되는 경우도 1000명 중 5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선릉탑비뇨기과 박문수 원장은 "하루 평균 1명꼴로 정관수술을 한다"며 "수술을 하더라도 정액의 통로는 회복성이 강해 끊거나 묶어도 연결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