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있을까, 없을까?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존재 유무에 대한 논란은 과연 유익할까? 신의 유무는 논외로 접더라도 종교는 과연 인간에게 유익한 것일까?
신의 존재 유무와 종교의 의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자신이 유신론자이건 무신론자이건, 종교가 주는 혜택에 대해 확신하건 종교로 빚어지는 폐해가 심각하다고 비판하건 간에 말이다.
진화생물학의 대가 리처드 도킨스는 35세 때 '이기적 유전자'를 집필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스타 과학자이다. 생물학을 바탕으로 생명의 기원은 물론 우주론까지 펼쳐내는 빛나는 지성에게 신이란 '유해한 망상(delusion)'에 불과하다. 있지도 않은 신을 토대로 펼쳐지는 종교 또한 타파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이라는 저서에서 이러한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바탕으로 생명과 우주의 진실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면서, 적어도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적 사실과 이성적 판단에 기초할 때 이 세상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설계(창조)'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또한 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기존의 모든 논의들을 철저하게 비판한다. 그는 이렇게 반문한다. 왜 무조건 신을 믿으라 하는가? 왜 신을 믿으려 하는가? 생명과 세계에 대한 질문의 궁극적 해답이 왜 아무 근거도 없이 '신'인가? 도킨스는 맹목적으로 신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믿는 자세 모두가 지적인 반역 행위며, 도덕적으로 비겁한 태도라고 간주한다.
신이 있다는 주장 역시 그에게는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그는 자신이 비판하는 대상을 '신(神) 가설'이라 이름 붙이고 정의한다. "우주와 우리를 포함해 그 안의 모든 것을, 의도를 갖고 설계하고 창조한 초인적, 초자연적인 지성이 있다."(51쪽)
도킨스는 이에 대한 반론도 제시한다. "무언가를 설계할 정도로 충분한 복잡성을 지닌 창조적 지성은 점진적 진화 과정의 최종 산물로 출현한 것이다. 진화된 존재인 창조적 지성은 우주에서 나중에 출현할 수밖에 없으므로, 우주를 설계하는 일을 맡을 수 없다."(51~52쪽)
그는 이렇게 비판해야 할 대상과 옹호해야 할 견해를 분명히 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신의 존재에 관한 인간의 판단들을 확실성이라는 양극단 사이에 놓인 스펙트럼 상에 나열하며 유형화한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7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강한 유신론자. 칼 융(Carl Jung)의 말을 빌리면, "나는 믿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다." ▲사실상 유신론자.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신을 굳게 믿으며 신이 있다는 가정 하에 산다." ▲기술적으로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 유신론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신이 있다고 믿고 싶다." ▲신의 존재 가능성을 50% 정도로 보는 철저하게 불편부당한 불가지론자. "신의 존재와 비존재 가능성은 확률 상 똑같다." ▲기술적으로는 불가지론자지만 무신론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신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존재에 회의적인 쪽이다." ▲사실상 무신론자.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신이 없다는 가정 하에 산다." ▲ 강한 무신론자. "칼 융이 신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확신한 것만큼 나는 신이 없다는 것을 안다."(81~82쪽)
도킨스는 자신이 '사실상 무신론자'에 속하지만, '강한 무신론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말한다(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그는 신학자들과 창조론자들의 방대한 견해와 주장을 일일이 검토하며 다각도로 비판한다. 그 분량이 많아 언뜻 중언부언한 듯 하나 이는 가능한 한 모든 반박 가능성을 잠재우려 한 의도로 파악된다. 특히 무신론자들에 대한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자료들을 접하다 보면 이러한 그의 서술 태도가 충분히 공감된다.
도킨스의 논증들 또한 쉽게 반박하기 어려울 정도로 설득력이 높다. 창조론의 모순을 드러내는 과학적 증거들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며 인접 학문들을 동원하고 논리학자와 같이 치밀하게 자신의 견해를 펼쳐낸다. 자신이 동의할 수 있는 증거와 논증이 나온다면 언제라도 유신론자가 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모두 10장으로 이뤄진 이 책의 후반부는 종교계의 위선과 종교의 폐해를 폭넓고 깊게 제시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성경에 대한 해석이 치밀하지 못한 대목도 간혹 눈에 보인다. 하지만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노력이 미흡하다고 그를 탓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신의 존재에 대해 맹목적인 믿음을 거부하는 과학적 사고에 대해 유신론자들이 보여줘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상상해 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Imagine, there's no religion)"이라는 존 레논의 노랫말을 인용하며 종교의 폐단을 매우 자세하게 드러낸다. 그가 툭 던지는 질문 역시 의미심장하다. 신이 있으며 자신들의 신만이 신성하다며 전쟁을 벌여온 사람들은 무수히 많지만, 신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전쟁터에 나갈 사람이 있겠느냐고…. 이 대목 역시 종교의 가치를 풍부하게 보여주는 대신에 지적 받은 폐단을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수 있을지 종교계에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 책의 집필 의도는 단호하고 명쾌하다. "균형이 잡힌, 행복하고 도덕적이고 지적인 무신론자가 될 수 있다"고 일깨워주려는 것이다. 유해한 망상에 집착하며 폐해를 감수하지 말자. 대신에 인간의 이성을 믿고 함께 어울려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가자. 세계적 지성의 이러한 도전과 제안을 꼼꼼하게 살펴보자. 종교인이라면 더욱 더!
※ 생각해 봅시다
'다신교에서 일신교로의 변화가 왜 진보라고 가정돼야 하는가?'(도킨스, 53쪽), 왜 일신교의 신은 대개 전지전능하며 가부장적인가? 종교란 그릇된 망상의 체계이며 배타적 행위의 구현인가? 종교와 미신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시대정신(zeitgeist)'과 기독교의 '원죄 의식'이란? '모태 신앙'은 종교의 자유를 사실상 침해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