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5시쯤 서울 지하철 면목역 3번 출구 앞 공원에는 40~50대 남성 80여 명이 모여있었다. 속칭 '노가다'로 불리는 일용직 일을 찾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1시간 후 공원에 남은 이가 10여 명으로 줄었다. 90% 가까이가 일을 찾아 사라졌다.
인부 박모(55)씨는 최근 한 달간 25일을 일했다. 비계나 철골작업을 주로 하는 그의 일당은 15만~17만원 사이다. 월급으로 치면 400만원 가까운 액수다. 그는 "경기가 안 좋다지만 거기에 영향을 받는 건 초보자들이다. 일할 줄 아는 사람은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불황이 다가온다는 건설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11일 오후 서울 충무로의 주상복합건물 건설 현장. 현장 직영반장(건설사에서 직접 고용하는 인력을 관리하는 직책) 이대승씨는 올해 65세다. 현장에서 그는 '만능 반장'으로 통한다. 직책은 낮지만 일만 생기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그는 1970년 미장이로 시작해 38년을 일했다. 철근, 철골, 목공처럼 현장에서 필요한 일은 안 해본 게 없다.
그의 장수(長壽)가 그가 꼭 유능해서일까? 그를 대신할 만한 사람이 없는 이유도 있다. 이씨는 "예전에 내 나이였으면 현장에 있을 생각도 못했겠지만 요즘은 사람이 모자라 계속 나온다"고 했다. 고령화는 관리직급인 반장만의 일이 아니다. 이날 충무로 현장에 나온 건설 관련 인부는 50여 명이었다. 이 중 20대는 3명. 30대도 6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40대 이상이었다.
건설산업연구원 신규범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2007년 말 기준 건설 현장 기능 인력 중 40대 이상의 비율은 71%다. 신 박사는 "지금은 나이가 많아 효율이 떨어지는 수준이지만 앞으로 10년 후면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지금 반장급으로 일하고 있는 장년층이 은퇴하면 현장 노하우의 전달이 끊어져 시공 기술 수준이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 현장의 고령화는 90년대 후반부터 가속됐다. 1992년 전체 취업자에서 40대 이상의 비율과 건설 현장에서 40대 이상의 비율은 3%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997년 7%, 2002년 11%로 커졌고, 2007년에는 15%까지 벌어졌다. 다른 직종에 비해 훨씬 빠르게 장년층 비율이 증가했다.
건설 현장에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 원인은 무리한 하도급이다. 도급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도급 업체끼리 원가 절감 경쟁이 붙었다. 낮은 금액으로 낙찰받은 업체는 인건비를 쥐어짰다. 이로 인해 건설 현장은 일은 고되면서도 임금은 낮아졌다. '몇 달 힘들게 일하면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직장'이라던 건설 현장이 '힘들게 일하고도 돈이 안 되는 직장'이 됐다.
빈자리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웠다. 한 번 외국인이 고용되기 시작하자 한국인은 더욱 건설 현장을 기피하게 됐다. 불법 체류자가 채용되면서 근로 여건이 나빠진 것도 한몫했다. 건설산업연구원 자료(2007년 기준)에 따르면 고용허가제 특례로 입국한 외국인 5만7797명 중 45%가 건설업종에서 일한다. 불법체류 근로자를 더하면 건설업에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1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외국인 작업반장도 등장했다. 한국 건설 현장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노하우를 배운 것이다. 24년 동안 건설 현장에서 일한 정제남(53) 반장은 "지금 당장은 외국인 작업반장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안 되지만 이들밖에 현장 기술을 모르게 되면 문제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는 결국에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와 함께 현장 기술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건설 현장 인부들이 맞고 있는 '때 아닌 호황'은 불법 체류자 단속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반장급까지 숙련이 되려면 최소 5년 정도는 필요한데, 외국인의 경우 언어 장벽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든다. 이 때문에 숙련된 외국인 근로자는 불법체류자인 경우가 많다.
건설 업계는 기술 개발로 현장 기능 저하에 대처하고 있다. 거푸집은 현장에서 상황에 맞춰 목공이 만들던 것이었다. 이제는 대부분 공장에서 반제품 형태로 만들어온다. 목공 외에도 철근 콘크리트 작업이나, 벽체 작업 등에서도 사람의 손이 덜 쓰이는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태성토건 이상원 소장은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건설 현장에는 꼭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 있다"며 "정교한 작업을 할 때는 숙련공이 필요한 만큼, 현장 기능이 한국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권해원 건설협회 인력지원센터 팀장은 "현장 기능 인력의 실력 저하는 결국 품질 저하, 공사 기간 연장으로 이어진다"며 "건설 현장에 대한 인식 개선과 국내 건설 인력 양성을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