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의 불온서적 선정과 군 법무관의 헌법소원 제기

국방부북한 찬양, 반정부 및 반미, 반자본주의 내용을 담은 도서 23권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영내 반입을 금지시켰다. 이에 정치권과 도서 관련 단체는 강하게 반발했다. 군법무관 7명은 집단으로 국방부가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관련 출판사와 저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함은 물론, 출판사와 저자의 명예를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네티즌들은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을 읽는 클럽을 만들어 국방부의 조처를 풍자했다. 인터넷 서점은 국방부 불온서적을 읽고 200자 평을 남겨주면 적립금을 드린다는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국방부가 금서목록으로 만든 책들이 좋은 책으로 평가돼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국방부는 불온서적은 용어상의 문제일 뿐 군 정신교육에 지장을 주는 도서로 단지 영내에서만 금지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DB

■불온서적 선정에 대한 찬성 의견

군인은 특수 신분이고, 우리나라는 동서 냉전의 잔재가 유일하게 남아있는 지역이다. 국가보안법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건재한 것은 이러한 특수 상황 때문이다.

군인과 군대에 대한 관련법이 존재하듯이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을 선정하는 것도 특별히 문제될 게 없다. 상명하복의 명령체계로 유지되는 군대는 일사 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다양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군대 조직을 원한다. 전쟁에서 군대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대적 의식을 지녀야 한다. 군대 내부에 불온한 내용을 담은 책이나 자료가 유입되기 시작하면 군인들은 긴장이나 규율 따위가 풀려 마음이 느즈러진다.

현대전으로 올수록 사상전이 중요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연합군에 비해 뛰어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사상교육과 선전선동에 있었다. 군대조직이 아무리 비합리적인 조치를 취하더라도 명령조직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군법무관들이 국방부 정책에 집단적으로 반기를 들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은 지휘권에 도전하는 행위로 항명에 해당한다.

■불온서적 선정에 대한 반대 의견

자유롭게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행복추구권이다.

국방부는 학문·표현·양심의 자유를 심각히 제한했고, 일반인과 군인이 똑같이 누려야 할 권리에 제한을 두었기 때문에 평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대학교재로 사용되거나 공영방송 프로그램에서 권장도서로 소개돼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책을 불온서적으로 판명한 것은 국민의 양식 수준을 무시하는 처사다.

사상을 통제하는 것은 군인독재 시대에 노동·학생 운동 등, 사회 비판세력들을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던 권위주의 방식이다.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받아들이고, 다른 생각을 원천봉쇄하는 것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이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자기들의 말을 따르지 않는 한국 사람들을 지칭하는 불령선인(不逞鮮人)과 유사한 불온개념을 현대 민주주의 시대에 사용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법무관들의 헌법소원 제기는 군대 조직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바라는 것으로 인권의식이 잘 반영된 행동이다.

■불온서적 선정 논란의 특징과 사회적 맥락

불온이라는 개념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건재하다는 증거이다. 논란의 핵심은 군인에 대해 어떤 전제를 설정하느냐에 달려있다. 불온서적 선정을 찬성하는 측은 군인은 특수신분이라고 정의하고, 불온서적 선정을 반대하는 측은 군인도 똑같은 국민이라고 정의한다. 특수성과 보편성의 논란이다. 군 법무관들의 헌법소원 제기의 적절성은 기본권 제한에 대한 헌법 조항을 찾아봐야 한다. 37조 2항에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에 의해 기본권 제한이 가능하나,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은 제한할 수 없다고 나와 있다. 역사적으로 금서목록을 정하는 것은 종교차원에서 시작됐다. 갈릴레이의 서적이 로마가톨릭교회에 의해 금서로 선정돼 탄압을 받은 것은 지배적인 종교집단이 가진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부정했기 때문이다. 분서갱유로 유명한 진시황도 자신의 정치철학에 부정적인 사상을 전면적으로 통제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서 빅브라더는 사상과 과거를 통제하면서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한다.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 현대판 감시카메라인 텔레스크린이 일상화되고, 새로운 문법구조로 언어를 변형해 신어(新語) 체계를 만듦으로써 사고를 조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