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나면 식구들이랑 대학 때 듣던 클래식 음반 꺼내서 들어요. 빅뱅, 원더걸스 좋아하는 아들 딸과 작곡가 얘기 하면서 소품 하나씩 감상하니까 참 좋네요."

전업주부 정경란씨(37)는 최근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클래식 음반을 다시 꺼냈다. 영문과를 다니면서 클래식음악 동호회 활동을 했던 정씨는 빛나던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음악감상에 푹 빠졌다.

그동안 육아와 살림에 치여 살던 정씨가 20년만에 다시 클래식을 듣게 된 건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덕분. 정씨는 "극중 강마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은 정말 섹시하다"며 "요즘 강마에 보는 낙에 산다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클래식 드라마 1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베토벤 바이러스'가 '클래식 바이러스'를 전국에 퍼뜨리고 있다. 때아닌 클래식 열풍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것. 클래식 애호가들은 물론 문외한이었던 이들도 극중 연주된 곡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클래식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레슨에 국한됐던 악기 수업도 클라리넷이나 오보에, 비올라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 곡 제목 뭐야?-'베토벤 바이러스' OST 3만장 초히트

시청자들의 눈가를 촉촉하게 적셨던 '최고의 곡'은 5회 '똥덩어리 정희연'이 솔로 연주를 했던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다.

강마에로부터 '똥덩어리'란 '폭언'까지 들었던 평범한 아줌마 정희연(송옥숙)이 첼리스트의 꿈을 되찾는 솔로 연주를 한 장면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줬다는 평. 슬픔을 승화시켜 삶의 의욕을 불어넣는 멜로디를 애절하면서도 매혹적으로 연주해 히트를 쳤다.

오합지졸이었던 오케스트라가 아름다운 선율의 조화를 처음으로 느끼는 장면에 삽입된 '넬라 판타지아'도 '베토벤 바이러스' 마니아들이 첫손에 꼽는 곡이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이 곡은 영화 '미션'의 주제가로 삽입돼 유명한 노래다.

이밖에도 그 유명한 베토벤의 '합창', 요한 스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등이 연주되며 우울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

유니버설에서 내놓은 '베토벤 바이러스' OST는 클래식 편집음반으로는 이례적으로 교보문고 음반차트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 3일 발매돼 한달이 채 못돼 3만장이 넘는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중이다.

'단군 이래 최악'이라는 음반계 불황을 감안하면 '울트라 히트'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로망스 2번', '교향곡 5번-운명',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등을 비롯해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주페 '경기병 서곡'처럼 클래식을 잘 모르는 이들도 한번쯤은 접해봤을 친숙한 곡들을 수록해 인기다.

▶'베토벤 바이러스' 후광효과

드라마 인기의 후광을 톡톡히 보고 있는 분야도 많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모태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일본의 클래식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는 요즘 다시 전파를 타며 또한번 인기를 누리고 있다.

'노다메 칸타빌레'는 우리나라에도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을 정도의 히트작. MBC드라마넷은 '노다메 칸타빌레'와 '베토벤 바이러스'를 함께 묶어 방송해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OST 역시 '베토벤 바이러스' 방송 이후 판매량이 2배 이상 늘어났다. '노다메 칸티빌레'는 라이브 앨범과 '오케스트라 스페셜 베스트' 앨범을 합쳐 3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려 지난해 팝 세일즈 중 베스트 10위권에 들었다.

가을 극장가도 클래식 선율에 물들었다.

이탈리아 천재 재즈 피아니스트 루카 플로레스의 삶을 그려낸 '피아노, 솔로'를 비롯해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카페',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 등을 만날 수 있다.

소설 '10번 교향곡'도 베스트셀러다. 베토벤 전문가이자 음악가인 조셉 젤리네크가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을 소재로 쓴 추리소설. 클래식 음악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미스터리와 맞물려 재미있게 풀어내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GS이숍(www.gseshop.co.kr)의 안윤환 MD는 "'베토벤 바이러스'가 방송된 9월 초부터 오리지널사운트트랙(OST) 뿐 아니라 피아노, 색소폰 등 악기 매출이 2배 이상 올랐다"고 전했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현실로

클래식 음악과 연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부쩍 는 건 최근 세종문화회관이 기획한 '시민 체임버 앙상블' 모집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세종문화회관은 3개월전 내부 직원의 아이디어로 '시민 체임버 앙상블'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한때 연주자를 꿈꿨지만 시간적 금전적 이유로 포기했던 이들의 로망을 실현시켜보자는 것.

일주일에 한번 모여 연습을 하고 공연을 준비하는 활동을 세종문화회관이 지원하는 행사로 세종문화회관 예술단원 연습실을 공개하고 전문 음악강사도 초빙할 뿐 아니라 실력이 갖춰지면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까지 준다는 계획이다.

세종문화회관 측은 "지난달 27일부터 지원을 받았는데 주말까지 160명이 지원해 깜짝 놀랐다"면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와 우연하게 시기가 맞물려 관심이 많이 쏠린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