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어리지만 10대만을 위한 그룹이 아닌, 춤과 노래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그룹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원더걸스’의 흥행 성공으로 박진영(36)씨는 최정상 프로듀서로의 입지를 다시 한번 굳혔다. 박씨는 연세대 지질학과를 나왔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1994년 가수로 데뷔했으며 1999년 JYP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지금까지 god, 비, 별, 노을 등을 기획하고 2007년 첫 여성그룹 ‘원더걸스’를 만들었다. “원더걸스의 컨셉트는 6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를 올린 god와 비슷합니다. 기획 측면에선 항상 트렌드를 이끌고 가수들은 끝없이 피나는 노력을 해서 일단 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 그룹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죠.”

원더걸스 결성부터 ‘JYP투어 콘서트’ 참가를 위한 뉴욕 방문기까지 담은 MTV ‘원더걸스’ 프로그램을 통해서 박씨의 원더걸스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직접 작사·작곡해 프로듀싱한 음악은 물론 무대의상·안무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Tell me’ 안무는 뉴욕에 있는 연습실에서 새벽 1시에 찍어 서울로 보낸 것이다. 안무를 보낼 당시 원더걸스는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모두 마친 상황이었지만 박씨가 다시 보낸 안무로 재촬영을 해야 했다. 결과는 ‘대성공’. ‘군인텔미’ ‘여고생텔미’ ‘경찰텔미’ 등 수많은 버전의 UCC를 만들어냈고 ‘Tell me’는 2007년을 가장 뜨겁게 달군 아이콘이 됐다.

원더걸스의 선발과 관련해 박씨는 “원더걸스뿐 아니라 나의 사람 선정 기준은 ‘인간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저는 능력만 있는 사람을 뽑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해야 하니까 인간성이 좋고 내가 좋은 사람을 뽑죠. 가창력,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 그 자체입니다. 주위 사람 중에 함께 노래방에 가면 노래를 못 불러도 듣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고, 노래를 잘 하는 친구임에도 듣기 싫은 사람이 있죠. 마찬가지로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건 사람 그 자체의 매력에서 나오는 것이지 가창력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원더걸스 하면 꼭 따라붙는 가창력 논쟁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Tell me’의 경우는일부러 노래를 못 부르도록 주문했기에 가창력이 없어서 못 부르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마돈나, 스테이시 큐 등 1980년대 팝가수들은 일부러 노래를 못 부르는 척했습니다. ‘Tell me’ 노래가 1980년대 분위기를 내도록 하기 위해 스테이시 큐의 ‘투 오브 하트’를 샘플링했고 노래를 들려주며 흉내를 내게 했죠. 그랬더니 자꾸 잘하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노래를 못 부르는 척하라고 계속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노래 도중 소위 ‘삑사리(음 이탈 현상)’를 낸 것에 대해선 잘못임을 인정했다. “‘삑사리’를 낸 후 문제가 되기 시작하면서 더욱 움츠러들었어요. 어린 데다가 갑작스럽게 얻은 엄청난 인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무대에 오를 때마다 긴장하게 돼 실수가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복고’와 ‘섹시’로 무장시킨 원더걸스의 신곡 ‘Nobody’는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으니 일단 엔터테이너로서의 성공에는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이수만

“문화 소비의 주체로 30~40대가 떠오르고 있기에 30~40대 남성을 중심 타깃으로 기획한 팀이 ‘소녀시대’입니다. 30~40대 여성을 타깃으로 기획한 팀이 ‘샤이니’고요.”

‘소녀시대’를 만든 이수만(53)씨는 SM엔터테인먼트의 이사 겸 프로듀서이다. 회사에서는 ‘회장님’으로 통한다. 이씨는 경복고, 서울대 농업기계과를 나왔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1년 ‘4월과 5월’을 통해 가수로 데뷔했고, 1980년대에는 전문 MC로 활동하다가 SM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1995년에는 남성 5인조 그룹 HOT를 통해 SM엔터테인먼트를 대형기획사로 만들었다. 이어 신화, 플라이투더스카이, 보아, 동방신기 등을 배출하면서 ‘스타 제조기’로 불려왔다. “소녀 9명으로 구성된 팀이 가진 색깔을 잘 살려줄 수 있는 이름을 찾기 위한 아이디어 회의 끝에 ‘소녀시대’라는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멤버들이 가진 소녀다운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데다 대중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죠.”

이씨는 시대의 흐름을 한 발 앞서 읽는 재주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는 미국 유학 후 국내에서는 최초로 자신의 노래를 이용해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횟집만이 즐비하던 월미도에 명소가 된 카페를 만들었다. 스타 제작자가 된 후의 행보를 봐도 알 수 있지만 그의 감각에는 누구라도 감탄하게 된다. 이씨는 이 같은 탁월한 흥행 감각을 이용해 스타와 관련된 콘텐츠 개발을 통한 사업영역 확대에도 힘을 쏟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음반도매, 이벤트, 방송프로그램·애니메이션 제작, 연예대행, 인터넷, 영상노래방, 출판인쇄, 캐릭터, 라이선스 사업 등에 이르기까지 40여 업종에 손을 뻗고 있다. 작년 에스엠온라인(구 다모임)을 인수했고 동영상 UCC 포털인 ‘엠엔캐스트’의 서비스를 개시했다. 지난 4월에는 다날과 ‘UFO’라는 스타 다이렉트 팬레터 공동사업 계약을 체결했고 6월에는 인터뷰 매거진 ‘S’를 창간했다.

최근에는 고아라, 이연희 등을 통해 연기자 매니지먼트를 시작했으며 SM픽처스 설립과 함께 슈퍼주니어가 출연하는 ‘꽃미남 테러사건’을 제작하는 등 활동 분야를 넓혔다. 끊임없이 스타에 열광하는 팬들의 구미에 맞춘 콘텐츠 사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서도 이씨의 스타 기획력은 강력하게 발휘됐고한류열풍을 선도했다. 그는 그룹 HOT를 중국에 진출시키면서 ‘한류’라는 신조어를 굳건하게 만들었고 남성 그룹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를 아시아 최고의 아이돌 스타로 키웠다. 또 가수 보아를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일본 최고의 가수로 키워냈다. 보아는 10월 21일 미국 진출을 앞두고 있다. 천상지희를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로 만든 것도 역시 해외 진출을 위해서였다. 해외 진출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생각은 2006년 하버드대 MBA 학생 대상 특강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류를 주제로 한 이 특강에서 그는 “중국이 세계 최대의 연예시장으로 떠오를 것”이라며 “최고의 스타는 최대 시장에서 나오기 때문에 아시아 시장이 세계 일류 연예인의 중요한 산실이 될 것이고 중국이 미래의 할리우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아시아 비즈니스 확대를 위해 이벡스와 중국 최대 매니지먼트사인 쳉티안과 합작하여 ‘SMAC’를 각각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