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금 3억원을 사기당한 악장 바이올리니스트, 카바레 색소폰 연주자, 교통 정리하다 정직당한 경찰 트럼펫 연주자, 엄마와 아줌마 역에 몸 바쳐 충성하느라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첼리스트. 그것도 모자라 '오케스트라 킬러'라는 별명으로 전 세계에 악명 높은 '왕싸가지 지휘자'까지. 이 오합지졸 '찌질이' 오케스트라의 요절복통 성장 드라마가 때 아닌 '강마에(마에스트로 강의 애칭)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강마에는 나이가 많아서, 불러주는 데가 없어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단원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부모 때문에, 자식 때문에, 애 때문에 희생했다? 착각입니다! 결국 여러분 꼴이 이게 뭡니까. 하고 싶은 건 못하고, 생활은 어렵고, 주변사람 누구누구 때문에 희생했다, 피해의식만 생겼잖습니까! 이건 착한 것도 아니고, 바보인 것도 아니고, 비겁한 겁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백 가지도 넘는 핑계를 대고 도망친 겁니다!"
떡잎부터 알아보기는커녕 떡잎이 혹시라도 튼실할까 봐 싹부터 뭉텅 자르는 윗사람들에 익숙한 현대인들. 아침마다 날아드는 대출광고 스팸 메일을 삭제하며 투덜거리고 연일 폭락하는 주가 소식에 벙어리 냉가슴 앓는 현대인에게,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져 참아야 할 감정이 무엇인지도 망각한 현대인들에게, 강마에는 인정사정없이 다그친다.
"누가 너보고 참으래? 그냥 터뜨려! 착해야 한다, 멋있어야 한다, 해야 한다 따윈 집어치우라고! 그냥 네 본능대로 하란 말이야! 오기! 독기! 싸우고 덤비고 터뜨리라고!"
시청자는 그의 어이없는 독설이 무서웠다가, 재수없었다가, 멍해졌다가, 마침내 터질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찌질이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귀머거리 베토벤의 '합창'을 들으며, 저마다의 권태로운 삶에 갇힌 욕망의 아우성을 듣는다. 남 탓하고 희생하고 핑계 대다가 놓친 인생의 소중한 기회들을 신명 나게 애도한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클래식은 단지 음악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저마다 오롯이 반짝이던, 이룰 수 없다고 여겨 지레 포기해버린 뜨거운 꿈의 상징이다.
'베토벤 바이러스'에는 그 흔한 해외 로케이션도, 엄청난 물량공세로 시청자의 눈을 현혹시키는 스펙터클도 없다. 이 드라마의 유일한 액세서리는 음악이다. 보이는 TV를 들리는 TV로 역전시킨 이 드라마의 위력, 강마에의 싸가지 없는 리더십이 어여쁜 이유 또한 음악의 힘이다. 그의 절대권력은 오직 한 가지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의 눈치만 본다. 대통령이 참관한 연주회에서도 연주를 파투 낸다.
가난에 찌들어 컨테이너에 살던 소년의 유일한 꿈, 그 음악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것만이 그의 유일한 신앙이다. 그는 스타일을 구기지 않기 위해 욕망을 포기하는 현대인들에게 코웃음을 친다. 그 무엇에도 내 불행의 탓을 돌리지 않는 싸가지 없음을 가지라고. 언제든지 내 실패의 알리바이를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 현대인에게, 온라인 최저가 운세상담에 의존하지 말고, 족집게 사주팔자, 타로 카드에 네 운명을 맡기지 말고, 오직 자신이 사랑하는 꿈의 눈치만을 보라고 강요한다.
그 강요가 숨막히기는커녕 달콤하기 짝이 없는 이유 또한 음악의 힘이다. 드라마에 실린 클래식은 더 이상 고상한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라, 클래식의 역사를 줄줄 꿰어야 비로소 향유할 수 있는 전문적 취향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뜨거운 소주를 마시며 내 방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절박한 사연의 날실과 욕망의 씨줄이 얽혀 있는 음악의 힘은 공연 티켓 없이도 최고의 음악을 경험할 수 있는 TV 드라마를 창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