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판에 인생을 건 도박꾼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 '타짜'는 허영만 원작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만화 스토리작가 김세영(55)이 글을 썼고 만화가 허영만이 그림을 그렸다. 타짜는 허영만·김세영 콤비가 만들어낸 숱한 히트작 중에서도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만화다. 1999년부터 스포츠 조선에 4년간 연재됐고, 같은 신문에 한번 더 연재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작년엔 영화로 만들어져 690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 요즘엔 TV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다. 온라인 게임으로도 만들어졌다.

타짜가 이렇게 매체를 넘나들며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도 '타짜의 작가 김세영'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만화가'는 누구나 다 알지만 '만화 스토리를 쓰는 작가'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는 만화계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 스토리 작가이고, 만화가 뒤에 가려진 작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공을 인정받는 프로 이야기꾼이다. 신문 연재만화와 만화책에 '글 김세영'이라고 밝혀줄 것을 주장해 실현시킨 결과다.

김씨는 서울 서초구의 빌라에 틀어박혀 산다. 널찍한 집은 산속의 별장처럼 조용하고 책과 DVD를 가득 채운 책장이 벽을 가리고 있다. 키 187cm에 마른 몸, 허리까지 길러 하나로 묶은 머리카락과 텁수룩한 수염을 보고 있으니, 마치 오랫동안 속세를 등지고 도를 닦은 사람을 만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회생활을 안 해서 말을 잘 못해요. 질문을 받으면 멋진 대답을 해야 하는데 그게 하루 이틀, 아니 6개월 후에 생각나거든요."

김세영씨는 엎드려서 흰 종이에 칸을 나누고 대사와 지문을 써넣는다. 이렇게 쓴 만화 스토리를 팩스로 만화가에게 보내준다. 신문연재를 10년째 하는데 몰아서 쓰고 몰아서 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마감에 쫓긴다.

―외출은 전혀 안 하십니까?

"한 달 동안 집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가는 경우도 많아요. 요즘엔 일도 다 전화로 하면 되니까요. 나간다면 술 마시는 일 아니면 경조사 때문이에요. 술은 대한민국 누가 주량을 물어도 '당신만큼 마실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마시죠. 젊었을 때 거의 길에서 살아서 그런지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젊었을 때 길에서 사셨다고요?

"식구들이랑 집에 같이 있기 싫어서 나왔어요. 부모님은 빚이 많아 가난했고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셨어요. 길에서 밤도 새우고 노숙도 하고 많이 굶었어요. 젊어서 그런지 굶는 게 고통스럽진 않았어요. 그러나 잠 잘 데가 없다는 것은 힘들었죠. 오랫동안 한 쪽 벽에 책을 가득 꽂아놓은 방, 나 혼자 잘 수 있는 방을 꿈꿨어요. 학교는 고등학교를 석 달 다니다가 그만뒀고요. 그 후엔 혼자서 책만 읽었어요. 책 살 돈이 없어서 책을 많이 볼 수 없었던 게 불만이었지요. "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다면서요?

"책을 읽다 보면 책 속에서 항상 다른 책과 연결돼요. 그래서 이것 저것 읽었죠. 공부를 하려고 했으면 체계를 가지고 읽었을 텐데 아무 체계도 없이 읽었어요. 만화 작가에겐 그런 게 오히려 좋은 거 같아요. 학교를 빨리 그만둔 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계속 다녔으면 자연과학 쪽으로 관심을 가졌을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집에서 뭘 하세요?

"일 하고 미국드라마나 영화 좀 보고요. 바둑 방송도 보고 강아지랑 좀 놀아요. 만화가의 그림작업이 잘 되나 전화도 하고…. 그러면 하루가 가요. 만화책 한 권이 100~120쪽 정도 되거든요. 예전엔 쓰기 시작하면 하루에 한 권을 다 썼어요. 요즘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신문 연재 만화 한 회분을 쓰기도 힘들죠. 책으로 치면 9쪽 분량밖에 안 되는데 우물쭈물하다가 마감 직전에 쫓기면서 써요."

만화 스토리 작가들은 만화가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글을 쓴다. 시나리오 형식으로 쓰기도 하고, 대사와 지문, 어떤 이미지가 들어갈지도 다 써주는 콘티 형식으로 쓰기도 한다. 김씨는 후자의 경우다. 그는 방바닥에 엎드려 흰 종이를 펴놓고 '그림 없는 만화책'을 만든다. 칸을 나누고 대사와 지문을 써넣고, '콰당', '스르륵' 같은 의성어와 의태어도 굵은 글씨로 쓴다. 이 원고를 넘겨주면 만화가가 여기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늘 이렇게 엎드려서 일을 하세요?

"엎드리면 눈에 보이는 부분이 적잖아요. 보이는 게 없을수록 집중이 잘 돼요. 앉아 있는 것보다 피로감도 덜 느끼고요. 다른 사람들은 어깨와 팔이 아파서 엎드려서 일 못하거든요. 저는 특이한 체질인지 24시간 이러고 있어도 괜찮아요."

―'만화 스토리 작가'가 뭘 하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요?

"저는 '만화작가'라고 불러요. 스토리 작가라고 하면 왠지 줄거리만 쓰거나 만화의 초기 단계 일만 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거든요. 만화작가는 영화로 치면 연출이에요. 어떤 그림을 얼마만한 칸에 어떤 장면으로 그려 넣을 것인지 결정하는 일을 합니다. 어느 기자가 제게 '스토리 작가가 글을 먼저 쓰느냐, 만화가가 그림을 먼저 그리느냐'고 묻더라고요. 당연히 작가가 글을 먼저 써야죠. 심한 경우엔 제가 말풍선 속에 대사를 써넣는 일만 하는 줄 알고요. 만화 평론가라는 사람도 만화 작가의 역할을 모르는 경우가 있어요."

만화‘타짜’는 김세영에게 최고의 성공을 안겨줬다. 만화‘사랑해’는 만화작가 김세영의 존재를 대중에게 확인시켰다.

김씨는 원래 만화가가 되려고 했다. 1973년 친구들과 같이 경북의 한 산골에 들어가 만화 습작을 하다가, 친구가 하는 것을 보고 만화 스토리를 한번 써봤다. 그 원고를 본 만화가가 그 자리에서 원고료를 주고 사갔다.

"돈 벌기가 이렇게 쉽구나 싶어서 일주일에 한 편씩 만화 스토리를 썼어요. 한편 쓰면 그 시절 웬만한 성인의 한 달 월급을 벌 수 있었어요. 어차피 직업으로 생각하고 한 일은 아니라서 그렇게 번 돈으로 술 마시고 신나게 놀았어요. 그러다가 군 복무할 때가 돼서 그 김에 아예 만화에서 손을 뗐어요. 만화가 매력과 희망의 땅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왜 다시 만화 일을 하게 됐나요?

"처음엔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놀고 먹을 수 있나 궁금했어요. 평생 일을 안 하고 놀았으면 좋겠다 싶기도 했고요. 그러다 30대가 넘어가니까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고요. 사람들이 폐인 취급을 해요. 그래서 다시 돌아오게 된 거죠. 달리 갈 데도 없었고요. 저는 만화 일을 재미있어 하면서도 싫어했어요. 만화가 그 이야기를 쓴 사람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허영만씨와는 어떤 인연으로 같이 일하게 됐습니까?

"남자와 여자의 만남처럼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6~7년 만화 일을 쉬다가 다시 돌아와보니 만화가 굉장히 발전했고 인기를 얻고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심각한 만화도 쓸 수 있겠다 싶어서 제대로 그림을 맞춰줄 사람을 찾다가 허영만 선생님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연히 허 선생 문하생으로 있던 분의 소개로 같이 일을 하게 됐어요."

허영만·김세영은 1986년 '카멜레온의 시'로 처음 호흡을 맞춘 이후 '고독한 기타맨(1987)', '오! 한강(1988~89)', '벽(1990~91)', '미스터Q(1993)', '사랑해(1998~2000)' 등 히트작을 내놨다. 허영만 화백은 "만화 스토리작가들이 대부분 처음에만 잘하는데, 김세영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균형 있게 밀고 갈 수 있는 작가"라고 했다.

―두 분이 함께 한 작품은 대개 성공했지요?

"정치만화 '닭목을 비틀면 새벽은 안온다'는 실패했어요. 저는 '정객(政客)'이란 제목을 생각했어요. 정치판에 굴러 들어왔다가 이것 저것 겪고 떠난 사람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제목이 이상하게 정해지니까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켜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허 선생과는 그 작품을 하고 헤어졌다가 몇 년 후 다시 만나 '사랑해'와 '타짜'를 같이 작업한 후 또 헤어졌죠."

―두 분이 앞으론 같이 일하지 않으실 건가요?

"허 선생이 워낙 큰 별이니까 옆에 있으면 제가 안보여요. 제가 글을 썼어도 사람들은 다 허 선생 작품인 줄 알고요. 형님 동생으로 지내는 사이인데 제가 나서서 여기까지는 내가 했다고 그럴 수는 없잖아요. 작품을 생각하면 같이 일을 해야 하는데, 저 자신을 생각하면 헤어져야 하는 거예요. 늘 밑바탕에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요."

―기획단계에서 만화가와 작가는 어떻게 의견을 맞춥니까?

"허 선생의 경우엔 저보고 '도박 만화 한번 해 볼래' 그러세요. 그럼 제가 '잘 모르는데요' 이러죠. 그러다 허 선생이 '한번 해보자' 그러고는 그냥 하는 거예요. 그 다음엔 제가 원고를 가져다 드리거든요. 기업만화 같은 경우엔, 그분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있다면서 잡지 한 페이지를 복사해 주신 적도 있고요. 그런 정도예요. 스토리에는 전혀 간섭을 안 하세요."

―일한 것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면 힘들지요?

"워낙 이렇게 살아오긴 했지만 더 쌓이면 나중에 아플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눈 감을 때 후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인터뷰도 하는 거예요. 개인적으론 하기 싫지만 동료나 후배들이 우리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제가 나서야 한다고 그랬어요."

―만화가와 작가는 수익을 어떤 비율로 분배합니까.

"매번 달라요. 만화가가 7, 작가가 3정도 받으면 작가가 돈을 더 많이 받는 거예요. 그림 그리는 쪽에선 3~5명 정도가 같이 작업을 하니까 인건비가 필요하고 경비가 많이 들잖아요. 비율은 계속 달라지죠. 어떤 만화가와 하느냐에 따라 다르고, 영화로 제작할 때와 게임으로 만들 때 받는 비율도 각각 달라지고요."

―요즘 신문에 연재하는 만화도 주제가 도박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도박은 타짜를 끝으로 다시는 안 쓰려고 했는데 신문사와 출판사 쪽에서 계속 그것만 해달래요. 사골로 국을 끓인다면 지금 3탕 4탕 끓인 거니까 국물 맛이 나겠어요? 그래도 또 해달래요. 만화는 소설과 달라서 제작비가 드니까 제가 어떤 주제를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요즘엔 만화시장이 어려우니 연재를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신문에 연재하다 보면 구독률의 노예가 돼요. 인기를 생각하고 써야 하니까요."

―취재는 어떻게 하십니까.

"제가 도박만화를 쓰니까 사람들이 도박을 많이 하느냐고 물어요. 그럼 무협지 쓰는 사람들은 다 날아다니나요? 사실 전 취재도 해 본 적이 거의 없어요. '타짜'를 쓸 때 허 선생이 같이 가자고 해서 지리산에 가서 1950~60년대 활동하던 타짜들을 만났어요. 그때 밤새 술 마시면서 들은 얘기로 타짜 1, 2부를 썼죠. 모든 종류의 게임이나 도박을 제가 할 줄은 알아요. 그런데 워낙 사람들을 만나거나 뭘 물어보는 것을 싫어하니까 취재는 할 수가 없어요."

―그럼 어떻게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이야기를 구상합니까.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어떤 때는 일주일 전에 청탁이 들어오고, 연재 끝나자마자 며칠 쉬고 다음 작품 들어가거든요. 작품 구상하고 준비하고 그럴 시간은 없는 거죠. 그냥 실력으로 쓰는 거예요. '도박만화'인지 '기업만화'인지 '스포츠만화'인지에 대해선 신문사나 출판사하고 미리 결정하거든요."

―별다른 준비 없이 그렇게 긴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내지요?

"저는 어떤 주인공을 등장시킬지에 대해서만 생각해요. 그 다음엔 주인공을 걸어가게 해 놓고 저는 구경하는 거죠."

―그러다가 이야기가 막히면 어떻게 하지요?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든지 다음 연결이 안 돼서 막막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자극적인 게 필요하죠.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요."

―만화는 어떤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야 이야기를 풀어가기 좋은가요.

"젊은 사람이어야 해요. 나이 든 사람이 나오는 만화는 사람들이 잘 안 보니까요. 만화는 주인공이 대부분 20대 초반이에요. 또 성공하지 않은 사람들이어야 해요. 그래야 성공해가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거든요."

―지금까지 쓴 만화책이 몇 권이나 돼요?

"정확하게 모르겠어요. 만화 스토리 작가가 얼마나 업신여김을 당했는지, 출판사에서 책이 나와도 보내주질 않아요. 달라고 사정해야 해요. 작품 수로는 50~60개 정도 될 거예요. 권 수로 따지면 500~600권. 페이지수로는 7만쪽 정도 될 걸요."

―만화작가가 안 됐다면 어떤 일을 했을까요.

"밴드를 한다든지 프로기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보다 더 되고 싶었던 것은 도사 같은 거예요.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아요. 타짜 만화 3부에 보면 주인공이 카드 뒷면을 보고 앞에 뭐가 있는지 알아 보듯이 저도 한두 달 동안 그런 것을 해 본 적도 있었어요. 남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실험 같은 것, 그리고 예언 같은 것을 해서 맞힌 적도 있어요."

―이제는 '만화 스토리 작가'를 직업으로 받아들입니까?

"'사랑해'를 쓰면서부터 그런 것 같아요. 그 만화부턴 사람들이 김세영이 쓴 것이라고 기억해주기 시작했거든요. 지난 10년간 착실하게 신문 연재를 했어요. 그런데 이젠 힘이 들고 불만이 많이 생겨요.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일을 못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지금 하는 일이 왜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독창적인 생각을 표현할 길이 없으니까요. 내 생각을 내 뜻에 맞게 만화를 그려 줄 사람은 없어요. 또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이 저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림을 좀더 배워놨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요."

―소설을 쓸 수도 있지 않나요?

"이미 만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생각 자체를 그림으로 해요. 소설을 보면 묘사를 하는데 저는 그게 귀찮거든요. 그림으로 생각하면 한 컷으로 다 나오잖아요. 그래서 소설은 싫고요. 또 요즘은 소설이 더 돈이 안 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건가요?

"바둑 이야기요. 김옥균이 바둑을 잘 뒀대요. 김옥균에서 조훈현까지 바둑 두는 사람들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만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오래 전부터 생각했어요. 만화가 중에 워낙 이상한 사람들이 많고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아요. 삶에 흥미가 없는 20대 후반 여자가 기타를 배우는 이야기는 어떨까요. 한 곡 배울 때마다 인생과 사랑의 의미를 배워가는 거죠."

―늘 그런 식으로 공상을 합니까?

"밥 먹을 때 가족들과 대화를 안하고 다른 생각을 한다고 집사람에게 야단을 맞아요. 그런데 저는 공상을 해야만 밥이 맛있어요. 어느 날 내가 바둑을 굉장히 잘 둬서 이창호를 이긴 후 세계챔피언이 된다는 식으로 만화 같은 생각을 하죠."

―재미있는 만화 이야기를 쓰려면 황당한 상상력이 있어야겠지요?

"황당하면 만화 같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성인을 대상으로 한 만화가 황당하면 독자들이 말도 안 된다고 그래요. 요즘은 영화가 만화보다 더 황당한 것 같더라고요. 사람들이 제가 쓴 만화가 현실감이 있다고 하는데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쓰는 것이지 그런 걸 좋아하진 않아요."

그는 1987년 14살 연하의 부인 전현주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김씨가 숙대 근처 옥탑방에 살던 시절 호프집에서 만났다.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서둘러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만화가 '사랑해'다.

―결혼 후 인생이 완전히 바뀐 것 같더라고요.

"180도 바뀌었어요. 저는 열심히 살았고 가족을 위해서 노력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너무 상업적이고 돈 벌기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고민이죠. 물론 누구나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지만."

―만화 '사랑해'엔 철학자, 시인, 작가들의 말이 많이 인용돼 있는데, 그런건 어디서 찾아냅니까.

"원래 없는 사람이 있는 척하는 거잖아요. 공부를 안 해서 그런지 철학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아요. 좀더 있어 보이려고 철학적인 냄새가 나게 하지요. 요즘도 철학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대학교 2학년인 딸이 처음에 철학과를 간다고 했을 때 마음속으로 굉장히 기뻤어요. "

―여행은 안 다닙니까?

"집사람이 저에게 갖는 제일 큰 불만이 아무 데도 안 간다는 거예요. 지금은 바빠서 시간 내기도 힘들지만 사실 가보고 싶은 데도 별로 없어요. 가고 싶다면 벌판이죠. 물리적인 벌판이 아니라 정신적인 벌판이요. 젊어서 밖에서 떠돌며 살 때 거의 미치기 직전까지 고립되어 혼자 있었어요. 광기의 세계라고 할까요. 슬프고 무서웠지요.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보고 싶었는데 못 갔어요. 만일 제가 어딜 간다면 그 벌판에 가고 싶지 파리에 가서 뭘 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머리는 늘 그렇게 길게 기르고 계신가요?

"어릴 때부터 이발소에 가는 것을 싫어했대요. 예전엔 장발단속을 피하려고 서울 시내 파출소가 어디 있는지 다 외우고 다녔어요. 나중에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장발을 허용했죠. 그런데 그때부턴 제 머리가 빠지더라고요. 하하. 인생이 참 허무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