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4·7호선이 운행되고 하루 유동인구가 50만명에 이르는 서울 노원역 일대는 몇 년 전까지 '복잡하고 너저분한 동네'로 꼽혔다. 음식점을 비롯해 각종 상점이 500여개나 되는 노원구 중심 상권이지만, 밤이면 골목 곳곳이 불법 주차한 차들로 가득 차고 역사(驛舍)를 지탱하는 수십여개 기둥과 길바닥은 나이트 클럽 홍보물로 도배됐기 때문이다. 먹자골목으로 불리는 노원역 남쪽 파발마길은 삼삼오오 떼 지어 다니는 십대 청소년들과 유흥주점 호객꾼이 뒤섞여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애물단지 같던 이곳 일대가 시와 그림과 음악의 옷을 입은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했다. 1년6개월여 만에 변신에 성공한 노원 문화의 거리가 오는 8일 개장기념 축제를 앞두고,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노원역 일대가‘문화의 거리’로 바뀌었다. 노원역 아래 교각 천장은 하늘과 구름이 있는 그림으로 꾸며졌고, 네거리에 서커스단을 형 상화한 조각품과 안개분수가 설치됐으며,‘ 스카이 갤러리’라 이름 붙인 공중 화랑에 고은 시인의 작품이 내걸렸다. (왼쪽부터)

공중에 그림 내건 야외 갤러리

노원역 2번 출구로 나와 왼편 파발마길로 접어들자 공중에 펄럭이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 건물들 2층끼리 선으로 이어 천 재질의 그림을 걸어 놓았는데, 선이 굵고 색이 강해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다.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은 고은 시인이 틈틈이 그려 첫 전시회까지 열었던 작품들로, 작가 허락을 얻어 야외 전시용으로 다시 제작한 것이다. 노원구는 문화거리를 찾는 이들이 걸어 다니며 공중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이 야외 화랑(畵廊)을 '스카이 갤러리(sky gallery)'라 이름 붙였다. 구는 "실내 화랑에 머물러 있던 그림을 야외거리에 선보임으로써 보다 많은 이들이 미술을 즐길 수 있는 장(場)을 마련했다"며 "버튼을 누르면 작가와 그림 해설까지 볼 수 있는 단말기를 들이고 시내 유명 화랑과 협약을 맺어 전시회를 지속적으로 열겠다"고 말했다.

반대했던 상인들 새 도로 반겨

먹자골목이란 특징 외에 별 볼일 없던 이곳은, 바닥에 시(詩)가 새겨진 화강석 의자 80여개가 깔린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곳곳에 들어선 청사초롱 모양 가로등에는 스피커가 달려 있어 밤 9시까지 다양한 멜로디의 음악을 들려준다. 거리 입구에는 파리 개선문을 본떠 만든 폭 10m, 높이 6m 크기의 '파발마 개선문'이 생겼고, 파발마 중앙길 양쪽 끝에는 서커스단과 달리는 말을 형상화한 조각품이 들어섰다. 이 밖에 주말마다 공연이 펼쳐지는 야외무대와 이곳 공연을 대형화면으로 전하는 LED(발광다이오드) 전광판도 인근 백화점 주차장건물 벽면에 설치됐다. 그야말로 문화가 흐르는 거리로 꾸민 셈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장애가 적지 않았다. 분리돼 있던 보도·차도를 하나로 정비하려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공사를 하자, 많은 상인들이 "매출이 준다"고 반대했던 것. 정비 사업이 진행되면서 상인들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이곳 상가발전협의회장 김동일씨는 "초기 일부 상인들이 소방호스·소화기를 들이대고 공사를 막기도 했지만, 거리가 새로 단장돼 매출이 늘자 인근 상인들도 '우리 쪽도 빨리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동 넘어 서울 동북부 중심지로

서울시는 최근 '노원 문화의 거리'를 볼거리가 있는 보도(步道)를 만든 우수사례로 선정했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한 좋은 예로, 다른 구에서 참고할 수 있게 견학코스로 활용해야 한다"고 평가한 것이다. 등하굣길인 이곳을 오가는 학생들도 변화를 반겼다. 김희준(14)군은 "길거리에 그림과 조각품도 생겨 분위기가 훨씬 새롭고 좋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도·차도의 구분이 없어 보행자와 차량이 섞여 지나는 탓에, 인파가 몰리면 사고나 정체가 생길 수 있어 보인다. 구는 거리 곳곳에 무인 카메라를 설치해 불법 주·정차와 노점상 등을 강력하게 단속, 혼잡을 최소화해 안전사고를 예방하기로 했다.

문화의 거리 개장을 기념해 서울국제퍼포먼스축제가 7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12일까지 이 거리에서 열린다. 미국·프랑스·오스트리아·캐나다·러시아·일본 등 각국 문화예술 아티스트 41개팀 450명이 아트·서커스·마임·춤·음악 등 5개 분야에서 59개 공연을 펼치고, 아프리카 타악기 배우기 등 주민참여 프로그램도 선보인다.

이노근 노원구청장은 "명동 중앙길을 연상시키는 이곳 파발중앙길에 연극인 등을 위한 공연장을 들여 쇼핑과 문화가 어우러진 서울 동북부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02)950-4393